누가 뭐래도, 나는 나.

by 필제

나는 어릴 적부터, 여자가 되고 싶었다. 어렸을 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며 여성스럽게 노래하는 것이었다. 10년도 더 된 영상이었다. 그게 바로 오늘 세상에 퍼졌다.


제목: 여자인척 하는 남자아이

댓글: 더러워.

ㅡ 왜 남자애한테, 여성처럼 꾸미는지, 이유를 모르겠음.


영상 속 주인공이 나란 게 퍼지고 나서,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던 게 화근이었다. 친했던 친구들마저 다들 나랑 어울리기를 꺼려했다.

그날 부모님은 내 정체성을 돌려놓기 위해서 온 힘을 다했다. 집안에 있는 온갖 핑크색 옷들은 버리고 전부 남성복 다운 칙칙한 계열의 옷으로 바꾸었다. 엄마는 내게 넌 남자야. 그 사실을 잊지 마 란 말씀을 밥먹듯이 하셨다.

그렇지만 핑크색에 머리를 기르는 행위를 여성다운 것, 머리가 짧고, 무난한 색상을 남성다운 것 이라고만 지칭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요즘 시대에는 그 경계가 모호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 말은 여성다운 것, 남성다운 것이란 말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으면서, 남성은 남성다워야 해. 혹은 여성은 여성다워야 해.라고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정말로??

그해 무렵, 나는 중학교를 자퇴하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걸 보면서 엄마는 눈치를 채셨던 게 아닐까 싶다. 그날 엄마가 날 따로 부르시곤 했던 첫마디는 이거였다.

"... 너. 아니지?"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 줄 알았다.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미치도록 여자가 되고 싶었으니까.

"엄마, 저 여자가 되고 싶어요. 여자처럼 살고 싶어요. 그리고 이게 진짜 저예요."

나는 담담히 털어놓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그 말을 듣고는 날 이상한 사람처럼 볼까 두려웠지만, 그간의 행적들이 있었기에 난 그저 믿을 뿐이었다.

"ㅇㅇ아. 넌 남자야. 넌 남자라고..!! 왜 그래? 응? 그 영상 때문이니? 그거 때문에 이래?!"

엄마의 날 선 반응들이 힌동안 이어졌다. 원체 흥분 할 일이 없던 엄마는 유독 분노해 있었다.

"그 댓글보고 내가 널 남자답게 키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네가 어떻게 이래?!! 야, 넌 남자야! 넌 생물학적으로 남자라고. 그런데 뭐? 여자가 되고 싶다고?? 너 미쳤니?! ㅇㅇ아. 너 미친 거야. 그거 제정신인 사람으로는 그런 판단 내리지 않는다고!! 아니지 너 그냥 아픈 거야. 그 영상 댓글 내용 봐서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거라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숨이 턱 막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앞이 흐려졌다. 이런 소릴 들으려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한 번은 이야기했어야 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걸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 그런 거 아니에요."

".. 농담이지? 농담이라고 해라. 응?"


갑자기 짜증이 치솓았다.


"엄마. 이게 나예요. 엄마가 낳은 자식은 이런 사람이에요. 이게 진짜 나라고요!"

쾅!!

엄마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친 것이다. 엄마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 실망이다."


엄마는 말없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멍하니 상황을 곱씹었다. 실망? 실망이라고?? 데체 왜? 그냥 성별일 뿐이짆아? 성격이 달라진 것도 아니잖아. 근데 고작 그거 하나 때문에 실망이라고?? 쓴웃음이 나왔다. 설마 하니 계속 이런 상황을 겪어야만 하는 걸까?

멀쩡해 보였던 친구가 트랜스젠더. 친구들은 멀어졌고, 멀쩡해 보였던 아들이 트랜스젠더. 부모와도 멀어졌다.

"나도.. 나로 살고 싶어. 억지가 아닌걸."

아빠는 내 아들인 나만을 기억한다며, 내 존재를 부정하기 일쑤였다.

"노력해 주면 안 돼요? 그냥?! 나도 숨 막혀!! 그런데 더는 숨기고 싶지 않아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진짜 내 가족이라면 이런 날 받아들이려는 노력쯤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요!!"

"시끄럽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뱉지 못한 말들을 겨우 삼켰다. 한동안 나는 남자처럼 지냈다. 길렀던 머리도 자르고, 남자답게 살았다.

그런데.. 당당히 세상 밖에서 돌아다니는 젠더를 알아챌 때면, 나도 모르는 욕망이 다시금 깨어난다. 동경. 그리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강한 욕망. 그것은 꿈꾸어선 안 되는 금기이자, 꿈꿀 수 없는 욕망인 셈이었다.


나는 그동안 싸움을 피해 다녔다. 더는 밉보이기 싫어서. 세상의 눈총을 받기도 싫어서. 가족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기도 싫어서.

나는 진짜 날 꼭꼭 숨겼다. 오늘도 그 여자가 있다. 트랜스젠더인 그 사람이 있다. 나는 자연스례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런데 내 기척을 눈치챈 것인지, 잠시뒤 그녀가 홱 돌아 날 쏘아보았다.

"왜 따라와?"

".... 네? 아 그게. 너무 눈부셔서요. 저도 당신처럼 되고 싶기도 하고"

"너. 남자냐? 여자가 되고 싶은 거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날 쇼윈도 극장 안으로 데려갔다. 그 안에서는 스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치징하고,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이는 22. 너. 여자가 되고 싶다고 했지? 여기서 일할래? 물론 여자처럼 샤랄라 하게 입고는 귀여운 흉내 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네? 샤랄라...?"

"물론 표정연기는 배우면 되고, 발성은 좋아 보이더라. 이 영상 너 맞지? 얼굴이 빼박이네. 그럼 너래도 잘할 거고. 일 할 생각 있어?"

초등학교 무대영상이었다. 설마 하니 그 영상까지고 놀림받기만 했는데. 도움 받을 줄은 몰랐다. 당황한 얼굴로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로 내 삶은 달라졌다. 난 부모님 몰래 밤이면 밤마다, 그곳에 간다. 여자처럼 꾸미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곤 할 때마다 진짜 내가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어느 날은 마담이 날 불렀다.

"너. 부모님이 이러고 다니시는 거 아시냐?"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나는 말이다. 젠더인 거 밝히고 나서 부모님의 심한 반대에 시달렸다. 근데 너도 같은 상황인 거 같아서 말이야."
그리거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네가 원하는 데로 살아. 네 인생이잖아. 더는 숨기지 마."

네라고 대답했지만, 실제로 밝힐 생각은 없었다. 얼마만의 평화가 찾아왔는데 깨트리긴 싫었다.


어느 날은 어린 관객이 찾아왔다. 그 아이는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밝혔음에도, 눈 깜짝하지 않았다.

그 꼬마는 날 심각하게 비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언니는요. 바보예요. 좋아하는 꿈이 있는데, 부모님이 원하는 데로 살려고 해요. 그런데 언니는 지금 인생 후회 안 해요?"

"응. 후회 안 해. 그러니까 언니한테 전해주렴. 네가 원하는 삶을 살라고."


알고 보니 그 소녀의 부모님은 가족모두가 의사 집안이라, 자신의 딸마저 의대에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첫째 딸은 연예인이 하고 싶었더라 하는 이야기였다.

순간 내 이야기와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는 언니가 진찌로 좋아하는 걸 할 때만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말했다. 그게 아니면 불이 꺼진 느낌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타인의 의지대로 사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런 삶이 행복 할리 없잖아요. 부딪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해요."

죽은 사람. 확실히 갈등을 만들기 싫어서. 쥐 죽은 듯이 여자다움을 감췄던 난, 죽은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 꼬마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숨기고만 사는 삶을 내가 원할리 없다.

가족을 위한다며 숨겨왔지만 실상은 그들의 반응이 두려워 숨긴 것일 뿐이다.

부딪히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심지어 가족들이 전부 반대할지라도 나는 내 길을 가겠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을 때, 난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래요. 뭐, 어쩌겠어요. 전 이런 제가 좋은걸요. 그러니 한 번뿐인 인생 부딪혀 봐야죠.


"엄마, 아빠. 저 트랜스 여성 이에요. 부모님이 뭐라 하든 더는 신경 안 써요. 그런데 그냥 이게 나예요. 전 그냥 저를 사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 분 저 사랑하시죠?"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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