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의 향기 5-3화.

고대 지정학의 교과서 에데사 3)

by 굿닥터
8-3화. 하란_24797,034-035jpg.png 하란( 출처: https://www.ktb.gov.tr/EN-117807/harran--sanliurfa.html)


나는 그 찬란한 초대 기독교의 역사와 십자군 전쟁의 영웅담이 남아있는 하란유적이 지척에 있음에 불구하고 여기서 그냥 침대에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탈진까지 해서 비관에 빠졌는데 호텔보이 하심은 나를 정성스럽게 간호해 주었다.

하심은 쿠르드인이다. 그는 나에게 밤과 낮의 주인이 다른 이 도시에서 사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저녁이면 이 도시에 시리아를 건너온 쿠르드 반군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호텔 부엌에서 앉아 토마토를 볶으면서 나에게 쿠르드 노래와 언어를 가르쳐주곤 하였다. 노래의 운율은 슬펐고 그 언어의 뼈대인 문법은 인도 유럽어임이 틀림없었다. 튀르키예 민족주의자들은 쿠르드인이라는 것은 존재한 적이 없고 단지 산에 사는 투르크인일뿐이라고 말하지만, 쿠르드어는 튀르키예어와는 상이했다. 다만 이란어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주어 동사 목적어가 아니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었다. 주어와 동사 목적어라는 순서는 유럽어를 분류하는데 하등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지배자였던 튀르키예어와 페르시아 아랍어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하심은 쿠르드인은 흑인이라고 생각했다. 자기들은 얼굴도 투르크인들보다 더 검고 억압을 받고 있으므로 남아공의 흑인들과 같은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넬슨 만델라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쿠르드족은 아리안족이고 투르크족은 알타이족이다. 쿠르드족은 유럽인에 포함되고 투르크인이 동양인에 포함되지만 하심은 억압받는 쪽이고 더운 곳에 살아서 피부가 검게 그을렸기 때문에 자신이 투르크인보다 더 유색인종에 가깝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심은 억압받는 소수민족의 구성원답지 않게 냉소주의나 비관주의를 갖고 있지 않고 낙천적이었다. 그는 토마토를 볶아서 올리브유와 섞은 다음 다양한 향신료를 감미해서 소스를 만들고 거기에 야채와 양고기를 썰어서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만든 음식을 이곳 호텔에 장기거주하는 튀르키예 비밀경찰 직원들과 같이 밤새도록 떠들면서 먹었다. 잡음이 많은 라디오에 잡히는 시리아 방송에서 나오는 아랍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대학교수처럼 생긴 나이든 경찰이 반군이 출몰했다는 첩보를 받고서는 군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경비역할을 하는 하심은 이 경찰들에게 여기에 묵고 있는 튀르키예 반군의 끄나풀들의 명단을 넘겨주고, 반대로 경찰들의 동향을 파악해서 쿠르드 동포들에게 알려주는 이중첩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900년전 이 지역에 공국을 만들어 주둔했던 프랑스 계통의 십자군과 무슬림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싸우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존하고 있었다. 경찰들은 하심이 필요했고 하심은 경찰이 필요했다.

나는 이 초라한 호텔의 생활이 지루해지자 지중해의 어느 도시에선가 독일 대학생 관광객에게 받아놓았던 작은 여행가이드 책자를 꺼내어 읽어 보았다. 독일어로 쓰여진 책자에는 이 부근의 하란이라는 곳에 가면 십자군의 성이 남아있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부상에서 회복한 십자군 기사가 갑옷을 입고 칼을 찬 다음 말을 타고 시리아의 사막으로 나가듯이 한국의 동대문시장에서 산 배낭을 메고 제법 진지한 표정을 하면서 시내로 나갔다. 시내 로타리 건너편에 있는 여행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럽인 관광객들과 같이 봉고버스를 타고 거의 사막에 가까운 풍경을 보면서 한 시간 달려 하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돌과 진흙으로 지은 움막같은 건물들이 즐비했는데 우리일행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세수도 하지 않고 머리가 헝클어져 있는 아이들이 나타나 칙칙한 빛깔의 흐릿한 사진이 금방이라도 대충 복사해서 만든 것 같아 보이는 싸구려 관광책과 엽서를 들고 호객을 했다. 우리는 성을 몇 개 보았는데 모래 바람이 많이 불어서 어느 것이 십자군 성이고 어느 것이 무슬림의 성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우리를 따라온 아이들에게 튀르키예어로 물어보았다. 눈이 파란 한 5살 정도 꼬맹이 여자 아이가 자기가 답해주었으니 엽서를 사달라고 했다. 독일 여성은 그 장면을 사진에 담으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 어린 여자아이에 담겨있는 동과 서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곳 역사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자신이 그런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 그 아이는 함께 구경거리가 되었다. 독일 사람들은 이것을 샤텐프로이데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나 대상이 슬픈 것을 보면서 비극적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돌아오는 길에 아브라함이 묶었다는 신비한 모스크에 가서 거기에 있는 행운을 가져준다는 순수하고 푸른 타일의 색깔을 머금고 있는 물이 보이는 분수에 얼굴을 내밀고 동전을 던지기도 했다. 다른 곳은 혼잡하고 가난해 보였으나 이곳 모스크에서는 구약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청결하고 경건했다.

내가 에데사를 떠나는 날 하심은 나를 시장에 데려갔다. 우리는 진열대에 놓여 있는 메론, 수박과 내가 보지 못한 과일들 그리고 그 옆에 색동저고리처럼 여러 색깔로 펼쳐져 있는 차와 향료들을 보았다. 나는 소그드 상인들이 중국 신장 지방에서 비단을 산 후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거쳐서 반년 동안 여행을 한 후 동로마제국의 국경세관이 있는 에데사에 도착해 바로 이 시장의 가운데에서 페르시아어나 그리스어로 로마인들과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비잔틴 연대기의 기록에 따르면 페르시아와 로마제국 사이에는 에데사 세관이 있었고 로마 관리는 소그드 상인이 무엇을 숨기고 들어오는 것인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확인하면서 농담삼아 “당신 여자를 어디 숨겨서 데려오는 것 아니지?” 라고 묻곤 했다고 한다. 내가 다시 에데사를 방문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작가의 이전글비잔틴의 향기 5-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