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는 손님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by 유리
보내는 이-라테
받는 이-지안 언니



"넌 기적이라는 거 믿어?"


제이는 방금 떠난 소녀가 남기고 간 편지를 바라보며 책상에 앉아 있는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17년 동안 늘 제이의 곁에서 많은 걸 도와주었던 소꿉친구 혜성, 늘 무표정하게 있는 제이와 달리 혜성은 감정을 잘 드러내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스스럼없이 잘 다가오는 사람. 제이와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지 혜성은 낮에 편지를 받으러 오는 손님들에게 무척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매사에 무표정한 아이보다, 붙임성 좋게 웃으며 사교성도 좋은 아이를 더 편하게 대하니깐.


이곳에서 제이와 혜성이 하는 역할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제이가 받을 사람들을 선별하면 혜성은 초대장을 보내 손님이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고, 제이가 손님에게 편지를 전해주면 혜성은 편안한 분위기를 조정해 세심하게 손님을 챙겨주었다.


제이가 딱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이 소꿉친구가 정신을 하나 놓고 다니는 것 같다는 점이었지만.


"사람이 갑자기 안 하는 짓을 하면 죽을 날이 온다고 했던데..."

"시끄러워, 진지하게 대답해."

"오늘도 차갑네, 조금 더 다정하게 해 주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지만 눈빛은 재미있다는 듯 반짝이고 있는 모습을 본 제이는 대답 없이 책상 위에 있는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어 두었다. 아까 떠난 포메라니안 소녀의 소중한 편지였다.


"대답하기 어려우면 안 해도 돼."


제이는 바스락거리는 종이 재질의 편지를 만지며 상자에 골라 담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작은 리본이 붙어 있는 상자는 동물 손님들이 남기고 간 편지, 짙은 갈색으로 칠해져 있는 상자는 부모가 남기고 간 편지.

편지가 구겨지지 않게 차곡차곡 넣어 두면 늘 편지를 받을 대상자와, 여기에서 편지를 쓰고 간 손님을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하던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상자를 기준으로 삼아 편지를 정리하는 건 제이의 정리 방식이었다.


"근데 왜 갑자기 그게 궁금했는데?"

"그런 게 있으면 나에게는 왜 없는 걸까…"

"역시 엄청난 병에 걸린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인내심이 다 닳아 버린 제이가 혜성을 향해 상자를 던져 버려서 그의 뒷말은 채 이어지지 않았다. 가볍게 상자를 낚아챈 혜성은 언제나처럼 맑게 웃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런 적이 많은 것 같아. 하루를 사는 게 지겹게도 싫고, 그걸 억지로 또 살아가야 하는 덧없는 생각이 들다가 무기력해지는 거 말이야."

"상자나 줘."


상자를 던져 준 혜성은 제이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늘 무표정을 유지하지만 예전에는 많이 웃었던 아이, 하지만 지금은 아무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않는 친구. 혜성은 제이가 이곳 밖을 나가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고,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그녀의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이었다.


"여기 방문한 손님들은 전부 기적을 만난 것 같다고 말하곤 했잖아. 그렇게 생각해 보면 기적은 네가 만들어 내는 거 아냐?"

"..."

"이야기가 길어졌네, 뭐 기적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제이가 조용히 듣기만 하자 혜성은 분위기를 전환하듯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게 해답이 됐으려나?"

"나 바쁘니깐 조용히 해."

"바빠? 이제 곧 더 바빠질 것 같은데 괜찮겠어?"


그가 눈짓으로 문을 까딱이자, 작은 소란으로 느끼지 못했던 기척이 조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손님이라는 걸 알아챈 제이는 방금 전에 넣었던 편지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어떤 손님이야?"

"고등학생, 열아홉 살."

"아까 그 애 주인?"

"응, 아마도."

"그럼 난 내가 할 일이나 해야겠네."


가볍게 웃은 혜성은 책상을 치우고, 문 손잡이를 잡아 열었다.


편지를 받아야 할 손님이 찾아왔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