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그날은 하늘이 무너진 날이었다. 갑자기 고아가 된 날이기도 하다. 중년의 나이에 고아라니. 베이비 붐 세대의 끝자락에 태어난 나는 독자였다. 자녀를 서녀 명 이상 낳는 시기였기에 나는 동네에서, 학교에서 특이한 존재였다. 독신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아버지를 먼저 여의고 16년이 지난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70대인 노모가 없는 세상은 그전에 살던 세상이 아니었다. 나에게 유일한 피붙이가 사라지자 지구가 흔들렸고, 그 속에서 나는 혼자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50이 되는 동안 몇 번의 결혼 기회를 놓쳤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했고 중산층이 보유하는 아파트 한 채 없어서 불리한 조건이긴 했지만, 오랜 투병 생활을 하다 60 중반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홀어머니를 모시는 조건은 결혼 상대로서 결정적인 흠이었지만, 결혼에 이르지 못한 더 큰 원인은 나의 자존심이나 열등감 때문이었지 싶다.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 가며 결혼을 구걸하는 듯한 태도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이 독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독자인 내가 결혼을 못 함으로 가장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는 말을 주위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독자로 자라온 환경으로 얻은 고집 세고 타협 모르는 성격과 더불어 번듯한 직장이 없는 것과 여유롭지 못한 경제생활 때문에 끝내 결혼에는 이르지 못했다.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굴러 떨어져 뇌진탕으로 5일 동안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더 이상은 의미 없다는 의사의 권유에 동의한 유일한 보호자인 나의 선택으로 연명 치료가 중단되어, 그렇게 어머니는 하늘의 별이 되셨다. 어머니가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있었던 그 5일은 지상에도 있음 직한 지옥을 다녀온 듯한 시간이었다.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절망적인 걱정이 가슴을 압박했다. 노총각 아들의 부족하고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돌봄을 받으면서 비슷한 또래의 손주 자랑에 기가 죽어지내던 어머니의 부재는 나의 가슴을 무거운 납덩어리 같은 죄책감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드넓은 세상이 갑자기 원통형의 터널로 바뀌는 듯했다. 숨이 막혔다. 수많은 주위 사람들 가운데 노모 한 사람 없다고 세상이 이렇게 변하다니,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내가 서 있는 시공간을 옥죄고 있었다. 살아야 할 의미가 순식간에 사라진 듯했다. 세상에서 유일한 내 편 하나가 없어진 결과는 삶의 의미 실종으로 이어졌다. 병원과 장례식장을 찾아온 많은 친척들과 지인들의 조문과 위로가 끝나고 어머니의 유골을 매장한 후 나는 더 이상 삶의 끈을 붙잡고 있기가 너무나도 버거웠다.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존재 자체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무얼 해도 언제나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해 줄 단 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적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되면 좋아해 주고 손뼉 쳐 줄 사람, 못되면 괜찮다고 위로해 줄 사람, 모두가 의심해도 나를 믿어줄 단 한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삶의 가치를 상실하도록 만들었다. 현실이 아닌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간 내 모습이 보인다. 이제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하는, 해야 할 일이 낯설었고 친구나 친지들을 비롯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모르는 타인으로 느껴졌다. 처자식이 없어서일까. 독자로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이제야 완벽한 독자가 된 것이다. 삶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희미해지고 삶을 지탱하던 여러 가닥의 힘줄이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아, 이렇게 세상을 포기할 수도 있겠구나. 살아도 산 것이 아닌데 살아서 무엇하랴.
살얼음 언 강 위를 걷는 기분으로 다니던 회사에 출근은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도 내게 보내는 연민이나 동정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벌어놓은 돈도 없는데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생활은 어떻게 하나. 생사를 넘나드는 시점에 이르니 막연한 상황에서도 어떤 결단이 필요했다. 살 것인지 아니면 세상과 이별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압박이었다. 일단 회사부터 그만두었다. 어머니의 체취나 온기가 여전한, 어머니가 사용하던 살림살이 도구들이 눈에 밟히는 집에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밤에는 겨우 눈을 붙였지만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악몽에 시달렸다.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불쑥불쑥 중환자실에 있던 어머니의 모습과 임종 때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이 자주 찾아왔다. 골목 어귀 저쪽 모퉁이에 보행기를 끌고 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인다.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부르며 얼른 가까이 뛰어가니 어머니가 아니다. 그래, 어머니는 화장해서 내 손으로 유골을 바다에 뿌렸지. 분명한 사실에도 보행기를 끌고 가는 노인들의 뒷모습만 보면 어머니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한다. 그러다가는 현실을 자각하고 절망적인 마음에 휩싸인다.
집 안에서 그나마 어머니 생각을 덜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내 방이었고, 책장으로 둘러싸인 책상과 의자가 놓인 곳이었다. 하루는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책장을 보다가 꽂혀있는 책들을 바라보았다. 책이라도 읽으면 어떨까. 책이라도 읽으면 마음의 고통이 가라앉기라도 할 것 같았다. 그래, 책을 읽어보자. 책장에 줄지어 꼽혀 있는 책들은 모두 읽었다. 서점을 가야 하나. 가끔 가던 대형서점보다는 도서관이 떠올랐다. 더 가끔 가던 도서관이나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독자로 태어났기에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사촌들과 친했다. 자주 들렀던 큰집에는 단칸방이었던 우리 집과는 달리 방이 여러 개 있었고, 사촌들 방에 있는 책장에는 위인전이나 소설이 문고 형태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큰집에 갈 때마다 그 책장에서 책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위인전은 초등학생이 읽기 어렵지 않았으나, 소설책은 작은 글씨가 세로인 데다가 2단 구성이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교과서가 아닌 책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당시 유행하던 박계주의 '순애보'와 심훈의 '상록수' 등의 책을 틈틈이 읽기는 했지만 큰집에서 읽었던 양만큼은 읽지 못했고, 안타깝게도 대학을 다니면서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월급을 타면 간간이 광화문 대형서점에 들러 대여섯 권을 사서 읽곤 했다. 그렇게 책을 끼고 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담을 쌓고 산 것도 아닌 어중간 형태의 독서 생활을 이어온 세월이었다.
아침 일찍 도서관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열람실에 자리를 잡았다. 종합자료실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이 다양한 분야별로 제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 이제부터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하루 종일 읽자. 잘 알고 있는 제목의 책부터 뽑아 들었다. 주로 고전이나 베스트셀러 위주로 골라 도서관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책을 읽었다.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만큼의 심적인 압박은 줄어들었다. 차츰 마음이 안정되며 책에 몰입하는 시간이 늘었다. 책만 읽고도 살 수 있을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노숙자가 되는 한이 있어도 책만 읽고 살자. 당시의 다짐이었다. 죽음 대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장르 없이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유명한 책이다 싶으면 닥치는 대로 골라 읽었다.
그렇게 십수 년이 흘렀다. 무너진 하늘을 책으로 이고 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