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책을 멀리 하는 시대에 비록 소수이지만 '다독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치열한 책 읽기는 지속되고 있다. 그에 따른 성공담 또는 성공 사례 역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으며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런 빛나는 성공 뒤에는 '합리화'라는 무서운 적이 도사리고 있으며, 대개의 경우 독서로 뭔가를 이룬 이는 그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독서를 성공의 주요인으로 앞세운다. 책 읽기가 성공을 돋보이는 용도로 전락하면서 다른 모든 과정은 묻히고 생략된다. 독서가 전부인 것처럼.
합리화된 성공 사례는 우리 주위에 꽤 많이 널려 있다. 9등급이었는데 좋아하는 여학생을 사귀려면 공부를 잘해야 했기에 열심히 노력해서 1등급이 되었다는 말부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오직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자기 자신을 믿었기에 오늘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는 말까지 무수히 많다. 마치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유명한 첫 문장이 떠오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독서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이유를 들이대며 성공 비결을 대신한다. 독서로 수렴된 성공 이유가 다른 모든 과정을 덮어버린다. 오로지 책 읽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자격증 취득이나 명문대 입학 결과를 홍보하는 학원은 취득자와 합격생 수를 자랑하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그 학원을 이용하면서 자격증 취득과 명문대 입학에 실패한 사람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면 얼마나 좋을까? 책에 길이 있고, 그 길을 찾아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그렇게 멀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만큼의 삶의 지혜를 건져 올리기는 쉽지 않다. 사실 이해와 인식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따른다. 뭔가를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근거를 마련해서 포장해야 하는 부담을 갖는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성공 비결을 알고 싶어 하고 묻기 때문이다. 성공의 열쇠 중 가장 바람직해 보이는 것으로 독서만 한 건 드물다. 성공한 이가 책을 좀 가까이했다면 말이다. 세상의 어떤 민족이든 신화가 없는 민족은 없다. 한 민족의 창조신화가 없다면 그 민족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근거를 댈 수 없는 까닭이다. 성공 근거로 책 읽기는 뛰어난 본보기다.
수많은 분야에서 독서의 가치를 말하는 유명인사들은 글과 책이 발명된 이래 차고 넘친다. 인생의 의미와 삶의 지혜를 찾는 데 책 읽기 만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로 녹록지 않다. 학문이나 공부의 수단으로 책을 읽어 학자가 되는 경우는 예외이지만, 책으로 삶의 목적을 찾고 세상의 부귀영화까지 얻는 성공에 이르려면 더욱 험난한 과정이 따른다. 특히, 돈벌이 방법이나 사업 수단으로 책을 읽어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과장된 표현은 지나치다 못해 눈속임에 가깝다. 그런 사람들의 인터뷰 혹은 강연이나 저서를 읽어보면 자신의 성공의 이유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하면 된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은 실천을 담보할 수 없는 자기 계발서에나 어울린다. 책 읽기가 인생의 만병통치약이나 성공의 지름길로만 여겨져서는 곤란하다.
책을 많이 읽어서 정신에 큰 변화가 있었고, 그로 인해 안고 있던 여러 가지 걱정이나 고민을 덜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인풋이 독서라면 아웃풋은 글쓰기이기에, 다독가라면 글쓰기 실력이 좋아진 덕분에 에세이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작가가 되고 적은 돈이지만 돈벌이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 있다. 세상에는 책만으로는 풀 수 없는 수많은 난제가 존재한다. 책을 몇 권 낸다고 해서 전업작가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유명 작가가 되기는 더 어렵다. 독서의 가치는 인정하되 자신이 독서로 인해 얻는 가치의 정도는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책 읽기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부추김에는 더더욱 속지 말아야 한다. 책을 안 읽어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 세상에는 책과 멀리한 채 부자가 된 사람이 훨씬 많고, 책을 많이 읽어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독서를 성공 수단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합리화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감춘다.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읽는 재미에 빠져 책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정보와 지식 습득과 더불어 정신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독서를 상업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책 읽기 결과를 과대포장한다. 책 읽기는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나타낸다. 독서로 성공할 수 있다는 레토릭에 믿음을 보일수록 더 큰 실망과 좌절감에 빠질 수 있다. 인공지능과 동영상의 전성시대에 책 읽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과정 자체가 지난할 수 있다. 또,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소외감이나 죄책감 따위도 가질 필요 없다. 독서의 가치를 공유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선택을 하면 그만이다. 큰 부담 없이 책과 독서를 알아간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그것에 빠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책은 재미있고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려우니까! 독서와 관련된 상술이나 거짓과 함께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독서의 가치를 내 품 안으로 온전히 들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소중한 가치를 만들어본다.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은 독서 과정을 즐긴다. 그 어떤 보장 없이도 책에 대한 믿음을 유지한 채 깊이 파고든다. 독서는 인간이 만든 앎과 믿음의 영역이다. 그 속에 길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책 읽기가 주는 정신적 유희와 성장을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