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성공'할 줄 알았다!

<어느 날 책을 선택하다>

by 나승철

책을 선택한 삶에 '성공'이라는 무지개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책, 지식, 교양, 학문으로 가득 채운 삶은 인생의 이정표를 만들어 타인에게도 제시할 수 있을 거야. 아무리 밑바탕이 부족해도 평생 책과는 멀어지지 않았고 최근 십수 년은 책만 읽었는데 인생의 의미는 물론 인생의 가치를 드러내서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거야. 손 안의 작은 눈뭉치를 바닥으로 놓고 굴리면 서서히 큰 덩어리가 되어 곧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인풋이 많아도 아웃풋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삶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에서 두드러지게 변화된 모습은 없었다. 사변적인 지식은 실천적 행위로 이어지지 않았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기에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는 훨씬 성숙한 인격체가 되면서 삶을 좀 더 여유롭게 관망하며 살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책을 선택하기 전이나 이후에나 크게 나아진 건 없었고, 생활 면에서는 오히려 피폐한 삶이 이어졌다. 노숙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책을 읽겠다,라는 다짐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과 두려움에 몸부림쳐야 했다. 호기를 부렸지만 실제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 닥치자 앞이 캄캄했다.


도서관에 파묻혀 닥치는 대로 좋은 책들을 읽은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학교와 학원에서의 강연 요청이었다. 블로그에 인문과 자연을 가리지 않고 수백 편의 서평을 올리자 그걸 보고 강연 신청이 들어왔다. 그들의 요구 사항은 결국은 학부모들이 원하는 상급학교 입시와 관련한 내용을 짚어달라는 것이었고, 문과와 이과를 망라한 입시 전형에 나의 독서 이력은 가뜩이나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의 독서 편력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였다. 명문대 출신의 교수나 유명한 독서가가 아닌, '스펙'이 딸리는 독서가로 독서 이력만 보고 불려 다녔기에 매우 바쁜 일정은 아니었지만 책만 읽고도 강연 자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연 후의 반응 역시 나쁘지 않아 이런 상황이 유지된다면 생활도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기대했다. 코로나19가 오기 전까지는.


코로나19의 시작으로 강연 요청이 줄어들더니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강연이 잡혔고, 그마저도 1년에 한두 건으로 줄었다. 그 와중에 대학 입시 정책 변화가 또 다른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공정성이 대단한 이슈로 등장하면서 정성 평가보다는 정량 평가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에 떠밀린 교육부는 각 대학에 자기소개서의 폐지는 물론 학교생활기록부의 평가 항목 중에서 '독서활동상황' 자체를 빼버렸다. 객관식 시험만이 일체의 입시 부정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를 지배한 결과다. 정시와 수시로 나뉜 대학 입시 전형에서 아직 수시가 남아 있고, 수시에는 논술 전형이 존재하기는 하나 독서 비중만큼은 확실하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고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여서, 아직은 학교생활기록부에 독서 관련한 내용이 충실하면 입시에 일부 유리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독서와 글쓰기 행위 자체가 공부와 학습 영역에서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동영상 플랫폼이 득세하여 길고 짧은 동영상 시청이 독서를 대체하면서 책을 읽는 인구는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책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나날이 발전하고 지능화하고 있는 인공지능 때문에 책 존재 유지 자체를 의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종이책에 대한 전자책의 위협이 수그러들었지만 오디오북의 도전은 거세다. 읽는 뇌에서 듣는 뇌로의 상황이 뇌과학적으로 어떻게 인간의 뇌를 바꿀지 모르겠지만, 종이책의 위력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블로그나 밴드를 통한 성인들의 독서 관련 상담이 제법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다. 그만큼 독서 인구가 줄었다는 걸 증명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열정은 오히려 커졌으나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수는 줄었다. 독서계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는 양상으로 보인다. 과연 종이책은 사라지는 중일까. 아직까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책 관련 유명 저서를 보아도 종이책의 존재를 확실하게 장담하는 저자는 없고, 그저 막연한 예측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책을 선택한 자의 고심은 깊어진다.


책을 많이 읽으면 글쓰기 실력도 서서히 늘 줄 알았다. 오판이었다. 책 읽기가 인풋이라면 글쓰기는 아웃풋임은 분명하나 글쓰기의 질까지 나아지지는 않았다. 한두 줄짜리 감상평을 쓰다가 점차 서평의 면모를 갖추어가면서 쓰기 시작했지만 생각만큼 글쓰기 실력은 늘지 않았다. 다행히 블로그 서평을 보고 공저로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내 이름이 공저자 중 한 명으로 들어간 책('세기의 책: 문학 편 1, 디페랑스, 2022년 5월 출간)을 내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후 몇 가지의 원고는 출판사에서 출간 거절을 당했다. 원고를 볼 때마다 교정할 상당한 부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내 원고는 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언제까지 퇴고를 해야만 하는 걸까. 수십 번 혹은 수백 번이라도? '1만 시간의 법칙'은 나를 가볍게 지나쳐 간다. 나는 아직도 전문가가 되지 못한 모양이다.


여러 이유로 책을 선택한 이유조차 휘발유처럼 사라지는 건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환경의 변화에 내 마음까지 흔들린다면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불가능하다.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고 방향 전환까지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책을 선택하고 책 속에 파묻혀 산 대가가 이 정도라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책 속의 수많은 인물들은 운명과 환경을 이겨내기도 했다. 비극의 주인공들에게 내가 처한 환경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단, 나 자신의 현재 위치 파악이 우선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고 있나. 냉정하게 판단해 보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각오가 되어 있을까.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