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오기와 끈기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2>

by 나승철

'성공'이라는 목표는 아직 신기루에 불과한 상태이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성격 탓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번 잡은 목표는 미련하게도, 그 끝이 거의 드러나는 데도 붙잡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포기할 시점을 놓치거나 융통성이 부족해서 그렇게 됐다. 책을 선택한 결과가 보이기 시작해도 모른 척하고 있다. 다독을 하면서 글을 제대로 쓴다면 먹고사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아직도 믿는 중이다. 끈기보다는 오기에 가깝다. 그런 줄 알면서도 밀고 나간다. 갈 때까지 가 보자!


책 선택에는 최대한 신중한 반면, 한 번 잡은 책은 웬만해서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다. 나의 선택을 믿으며, 혹은 잘못된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려는 마음으로 마지막 장까지 읽고야 만다. 너무나 어려워서 중간에 포기하고 말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갈등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완독 확률이 거의 99%에 수렴한다. 이런 책을 왜 읽어야만 하지? 왜 이런 책을 읽으면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걸까? 읽어도 읽어도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아! 그래도 진도는 나갔다.


신중한 책 선택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중간에 포기한 분야의 책은 '자기 계발서'였다. 자기 계발서인 줄 모르고 선택했으며, '경영서' 혹은 '정신 수양'과 관련된 책임을 표방한 출판사의 상술에 넘어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당연한 출판사의 마케팅일 수도 있으니 잘못은 나에게 있다. 심리학 또는 뇌과학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표방하면서 자기 계발식의, '시크릿'류의 책인 경우가 많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처럼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겠지만, 읽다 보면 '과학'이 아닌 '하면 된다'라거나 '우주가 도와준다'라는 결론이 되기 일쑤다. 결국은 모든 책임은 자기 자신이 져야 한다. 사회적 시스템이나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율의 개혁은 필요 없다. 오로지 각자도생의 길만이 전부다. 국가와 사회와 공동체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변화와 개혁의 대상은 자신이다. 정의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만연해도 내가 알 바 아니다. 내 정신 승리만이 삶의 도구이며 원동력이다. 이상이 자기 계발서의 전형적 주장이다.


읽다가 너무 어렵거나 지루해서 그만두려고 한 책도 적지 않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임마누엘 칸트의 저서를 비롯한 철학 고전, 수사학 관련 책 들이 바로 그런 예에 속했다. 그 당시 위기를 극복한 방법은 읽는 도중에 해당 책을 쉽게 해설한 책을 병행해서 보는 것이었다. 입문서처럼 쉬운 해설은 어려운 본문을 읽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부족한 독해에 의한 이해 역시 만족할 만한 수준은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완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느 정도의 '유연성'은 필요했다. 모든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해의 정도를 좀 낮추면서 적당한 타협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입문서나 해설서도 없이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독해 수준의 책이라면 단 몇 쪽을 읽는 것도 큰 고통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완독은커녕 한 챕터도 읽기 어렵다. 일단은 완독을 목표로 해서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읽으려 노력했다.


읽는 중간에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수준의 엉터리 책이어서 '집어던진' 책이 몇 권 있었는데, '반일 종족주의'를 공저한 이영훈 교수의 책(제목조차도 생각 안 난다)이 그중 하나인 걸로 기억한다. '아, 이 책은 정말 쓰레기와 다름없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일제의 식민시대를 남의 일처럼 아무 쓰라린 감정이나 치욕스러운 마음 없이 너무나도 태평한 마음으로 기술하였으며, 오히려 일본의 식민시절 때문에 대한민국이 오늘날처럼 잘 살게 되었다는 주장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는 정신적 '오물'과 다름없는 책이었다.


영화평론가이면서도 다독가로 유명한 이동진 씨의 '독서론'은 나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이동진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가 방송에서 하는 말로도 느낀 점이지만, 그는 읽을 책 선택을 위해 책을 만지고, 서문이나 차례 및 주요 내용을 훑어보고, 읽다가 중간에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는 것 등의 모든 과정 자체를 '독서'라고 생각한다. 읽고 싶으면 읽고, 읽고 싶지 않으면 안 읽으면 된다는 그의 주장에 책 읽기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동조한다. 이동진 씨뿐만 아니라 다독가 중에서는 그와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있다. 유명 소설가인 김영하 씨도 방송에서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있어 그냥 사는 것이며, 독서는 사놓은 책 중에서 읽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이동진 씨나 김영하 씨의 독서에 대한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전파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책과 가까이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들도 독서에 대한 부담감부터 내려놓는 것이 책을 읽을 때 가장 우선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나의 '독서관'과는 많이 다르지만 두 분의 유연한 생각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그들의 글과 말에서 본받을 점이 많으니까.


하지만, 나는 책을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고야 마는 '고집'이 심하다. 책 선택에 더욱 신중을 기하면서 오랜 시간을 들이는 이유다. 제목과 저자만 보아도 읽고 싶은 책이라 하더라도 언론이나 공공 도서관 및 학술 단체 등에서 제시하는 서평 등이 있다면 꼼꼼히 읽고 난 후에야 읽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물론, 그런 과정이 내가 읽는 모든 책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으니까. 읽으려고 선택한 10권의 책 중에는 대략 한 권 정도는 잘못 골랐다는 후회를 한다. 후회를 하면서도 끝까지 읽고 만다. 책과 글쓰기에 대해 좀 더 파고든다.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그렇게 하고 싶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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