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승철 Oct 20. 2022

<82년생 김지영> - 연극(백암아트홀)

- 백래시를 걱정하며 - 


<82년생 김지영> - 연극(백암아트홀)


소유진, 김승대, 송영숙, 권태건, 안솔지, 장두환 출연.



2016년 10월에 나온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나는 2017년 8월에 읽었다. 이후 여성의 권리나 양성평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면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비롯해 국내 작가인 정희진 등의 책을 파고들었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연극을 본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커튼콜이 좀 더 길어서, 배우들의 간단한 담화나마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짙게 남았다. 서늘한 강남의 밤공기를 가르며 답답한 지하철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정하게도 느껴졌다. 



'김지영' 역의 소유진은 베테랑 배우다운 연기를 무리 없이 선보인다. 그녀의 연기를 보는 내내 어쩔 수 없이 '백종원'이라는 잔상을 지우려 몇 번 시도한 것도 사실이지만, 연기로만 보면 그녀는 썩 괜찮은 배우다.  



중형 극장이어서 배우들의 목소리를 마이크로 선명하게 들을 수 있게 한 건 극에 몰입하게 한 요소여서 작은 독백 같은 소리도 잘 들렸다. 특히, 아기가 우는소리는 아기 인형에서 직접 나오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넌 그냥 얌전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


"배불러까지 지하철 타고 돈 벌러 다니는 사람이 애는 어쩌자고 낳아?"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위의 대사들은 책에서도 나온다. 극은 비교적 원작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을 했나 보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더 적나라한 대사는 나오지 않았다. 



"아, 됐어.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


"내 잘못이 아니다.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해. 지금도 봐, 학생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줄 알아?"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 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 거야."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의 양성평등은 아직 멀었다. 백래시에 갇힌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하지만 희망은 있다. 극장에는 나와 같은 남자들의 모습도 꽤 보였다. 페미니즘의 전사는 아니어도, '생각' 좀 하고 사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민주주의 사회는 불편한 사회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