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판 '사랑과 전쟁' -
<벗> - 연극(극단 고래>
대학로 한양레퍼토리 시어터에서 오늘(12월 1일)부터 11일까지 단 11일간만 공연하는 극단 고래의 연극으로, '브런치'를 통해 관람 초청을 받은 작품이다. 오늘은 특별히 프레스콜 형식이지만 연극 전편을 감상할 수 있었고, 연극이 끝난 후에는 연출 및 각색자인 이해성과 북한 이탈주민인 김봄희가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다. 이 연극을 제대로 보기 위해 내가 한 일은 소설부터 찾아 읽어보는 일이었다. 북한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신선하고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왔고, 연극에 더욱 몰입해서 본 후에는 제작진과의 대화 시간에 최대한의 질문으로 궁금하고 아쉬운 부분을 대체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공연 초대에 흔쾌히 응한 이유는 이 연극이 북한 소설가의 중편소설 '벗'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중편소설 '벗'은 함경도 함흥시에서 출생하여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북한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1949년생 백남룡이 저술했다. 1988년 원작이며, 한국에서는 출판사 살림터가 단편소설 '생명'(1985년 북한 출간)과 함께 묶어 1992년 출간했다.
'벗'의 소재는 '이혼 문제'이고, '생명'은 '교육문제'를 다루었다. 북한에도 이혼의 자유가 있고 재혼까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부터 신기하게 느껴졌지만, 그만큼 우리는 북한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마냥 신기해할 수만은 없는 어떤 허탈한 감정도 씁쓸하게 밀려왔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강압적이지 않은 행정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개인'의 소중함이 따스한 인간애의 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니!
전 인민의 인텔리화를 우선하고 개인의 노력으로 인한 국가에 헌신을 다하는 걸 칭송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이광수나 심훈의 소설에서 주장하는 바가 비슷한 계몽 소설을 연상시켰다. 결국은 개인의 자유를 넘어 독재국가에 독재자 우상화라는 벽을 넘지는 못한 정치 및 사회 구조였지만 말이다. 당의 목적에 맞게 투쟁하면서 생활하는 이가 그 사회에서는 최고의 인물이다. 투철한 도덕관념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 씀씀이도 우리의 옛적 시절이 떠오르게 한다. 우리도 한때는 그렇게 살지 않았나!
소설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TV 시리즈물이었던 '사랑과 전쟁'과 비슷한, '북한판 사랑과 전쟁'의 한 꼭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연극은 소설과 내용이 아주 흡사하여, 책 내용을 연극이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북한 이탈주민인 김봄희(2008년 이탈)가 하는 '해설'을 빌렸다. 공연 처음 시작할 때 등장한 이어진의 '반도네온' 연주는 극과 궁합이 잘 맞아떨어졌다. 이번에 알게 된 반도네온은 아코디언과 비슷한 소리를 낸다. 이어진은 한쪽에 앉아 극 전체의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한다.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리석춘과 채순희의 일곱 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로 성을 바뀌었으며, 극의 마지막 부분에 김봄희가 직접 등장하여 남한과 북한의 동시대적 비교 내용을 거론하면서 끝맺음 하는 정도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리호남 역의 여자아이가 인형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1미터 정도의 인형은 배우 손아진이 자신의 발등과 인형의 발뒤꿈치를 자석으로 연결하여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혹은 인형의 팔과 눈꺼풀을 손으로 움직이게 하면서 말과 행동 연기를 한다. 의외로 별로 어색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연극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강조하며 인간에 대한 무한 신뢰와 따뜻한 애정을 인민재판소 정진우 판사를 통해 보여준다. 이혼 하나 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충분히 차린 다음에야 결정한다.
33살인 채순희는 시 인민재판소에 가서 정진우 판사에게 이혼을 판결해달라 요구한다. 이유는 남편 리석춘(35살)과 '생활리듬'이 맞지 않아서란다. 일곱 살 딸(책에서는 아들이다)과 함께 사는 가정의 남편 리석춘도 이혼에 동의한 상태다. 정 판사는 둘은 물론 둘의 직장까지 방문하여 주변 인물들의 말을 들어가며, 마치 형사가 수사를 하듯 신중하게 판결하고자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채순희의 6촌 오빠인 도 공업기술위원회 위원장인 채림의 어긋난 관료의식이 드러나고, 결국 정 판사의 끈질긴 노력 끝에 둘은 이혼이라는 파국을 피해 간다.
정 판사가 리석춘과 채순희의 사고와 행동을 바꾸기까지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적이거나 도덕주의적인 수사가 동원되고, 진심으로 리석춘을 도우려는 정 판사의 행동은 이혼하려는 두 사람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결국 정 판사는 본인의 임무 역시 당과 사회를 위한 헌신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적당한 상황 판단으로 판결하면 될 것을 굳이 시간과 사유의 노력을 기울이며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정 판사는 두 사람은 물론 둘의 딸아이에게까지 진정한 '벗'이 되는 결과 말이다.
채순희와 리석춘의 이혼 문제는 정 판사 자신의 결혼 생활도 돌아보게 한다. 자신 역시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고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군에 간 아들과 더불어 한 가정의 최선의 행복은 무엇인가. 리석춘과 채순희의 이혼 문제로 인하여 자신의 가정까지 돌아본 정 판사는 자신도 결혼 생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실행에 옮긴다. 따뜻한 배려는 또 따른 배려를 낳는 법, 정 판사와 아내인 한은옥의 애정도 온기가 스며든다. 요란한 밥상머리에 앉아 흐뭇해하는 둘의 모습이 그 증거다.
연극이 끝난 후 곧바로 연출인 이해성과 이탈주민이며 해설과 마지막 장면에 무대로 등장한 김봄희가 참여한 채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몇 명의 질문에 이은 답변이 이어지고 내가 몇 가지 궁금한 사항에 대해 질문을 했다. 첫째는, 책에 없는 내용인 마지막 장면에서 북한 이탈주민이 느끼는 감정이나 사고를 좀 더 강렬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느냐는 질문이었다.
연출가는 이념적인 문제인 관계로 너무 과하게 표현하는 것은 관객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의견을 펴며 현재 상태가 적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북한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연출가의 입에서 좀 더 고려해 보겠다는 그런, 내가 원하는 답변은 듣지 못했다. 여기서, 연출가의 소신이 드러난다. 베타랑 다운 풍모를 보이는 연출가에게 같은 주제로는 더 이상의 질문이 불가해 보였다.
둘째는, 채순희가 인민재판소에서 마지막으로 정 판사의 말을 들으며 커다란 심적 변화를 느끼는 장면이 너무 밋밋하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책에서는 채순희의 마음이 정 판사의 '설교'로 인하여 난도질당하는 동시에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는 정 판사의 수사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이다. 내가 생각할 때는 소설 '벗'에서 가장 클라이맥스가 아니었나 싶었다. 채순희가 마음을 돌려야만 이혼은 성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연출가는 '신파극'처럼 되는 것을 경계했다고 담담하게 말하며, 채순희 배우에게 절대로 울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석춘을 비롯해, 관료주의 화신인 채림, 정 판사, 정 판사 부인인 한은옥, 여교사의 남편인 연공 등 대다수의 인물들이 심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만 제일 강렬한 변화는 역시 채순희가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1988년의 북한과 2022년의 남한 사이의 강의 경계선을 허물고 싶은 연출의 의도였나 보다.
나는 오히려 완전한 '신파극'이 되는 한이 있어도, 그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을 의식하지 말고 정말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당시 북한 상황을 정확히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쨌든, 연출의 의도가 그렇다니 더 이상의 같은 주제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원숙한 연출가에 비해 나는 너무 '일천한' 관객일 뿐이다.
미안함을 무릅쓰고 한 마지막 질문은 북한 이탈주민인 김봄희에게 했다. 1988년과 지금의 북한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2008년에 북한을 이탈했기에 지금의 정확한 북한 상황은 몰라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의 이탈주민들의 생활을 보면 예전의 북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대답을 김봄희는 한다.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배우들의 외모와 연기 및 발성이 무난하다. 채순희 역의 이송이와 리석춘 역의 문종철 연기가 특히 좋았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정진우 역의 정나진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같은 말을 쓰면서도 외국인 같은 북한 사람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릴 때 그렇게도 모두가 부르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들어본 지가 오래다. 이념 싸움에 한민족이 언제까지 갈라 살아야 할까. 이렇게 가다간 정녕 남이 되고 말 것이다. 문화적인 교류와 경제적인 교류는 반드시 빠른 시간 내에 성사되어야 하지 않겠나. 지금 자라는 청소년들의 대부분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비참한 현실이다. 우리 기성세대의 잘못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