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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Dec 18. 2022

<서평> 하룻밤에 읽는 서양 철학

- 인류의 철학과 사상사 - 

<하룻밤에 읽는 서양 철학> - 양승권(페이퍼로드)


인류가 이제까지 쌓아온 철학과 사상을 한 권의 책으로 복기한다.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기억을 더듬어 읽을 필요가 있는 인류 지성사다. 저자는 대구 대학 성산교양대학 창조융합학부 교수로, 이 책은 2022년 4월에 나왔다. 철학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깨달음의 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확실히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이 문제인 인간에게 철학은 자신의 삶이 영원한 미완성이며 삶의 주도권을 갖고 삶의 철학을 만들어가라고 권한다. 행복할 때는 장식품, 고통스러울 때는 피난처인 동시에 삶을 위한 숫돌인 것이 바로 철학이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철학은 꼭 필요한 사고 훈련이다. 이제 그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철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대부분의 자연 철학자는 모든 물질에 영혼이 있다는 '물화론자'였고, 최초의 인물은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 주장한 탈레스다. 이후 만물의 근원을 무한자라 한 아낙시만드로스, 공기의 아낙시메네스, 불의 헤라클레이토스 등이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사물의 근원을 밝히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자양분 삼았다. 기원전 6세기, 터키 서쪽인 이오니아 지역의 밀레토스에서 '철학의 아버지'인 탈레스(기원전 640~550)가 신화를 철학으로 전환하여 최초의 철학자 명칭을 얻는다. 탈레스의 제자인 피타고라스(기원전 572~492)는 '기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영혼이 윤회한다는 주장을 하였고 우주를 거대한 음악으로 보았다. 민주주의에 반감을 가졌고 '우는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40~480)는 끊임없는 만물의 변화를 포착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이고, 다툼의 정의다." 


정신과 물질을 최초로 구별한 이는 아낙사고라스(기원전 500~428)로, 그는 '걱정' 없는 삶을 살며 정신을 철학사의 중앙에 등장시킨다. 민주주의 신봉에 소크라테스를 비판하고 최초의 유물론자이면서 '정신'을 부정한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70)는 만물 근원을 '원자'와 '허공'으로 보고, 최상의 가치는 '아타락시아(부동심)'이며 사후세계는 없다고 주장했다.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479, 그리스 국가 연합의 승리) 이후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번영을 누리며 인간학의 시대를 연다. 이때 대화술과 변론술을 펼치면서 인기를 끌던 소피스트가 등장한다. 소피스트의 대표 주자인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5~414)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며 무신론적 견해로 사형선고까지 받고 저작물이 불태워진다. 결국 도망가다 죽음을 맞이한 그에 의해 절대주의를 무시한 '상대주의'가 시작된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소피스트의 상대주의를 반대하였고 참다운 도덕적 삶을 탐구했다. '다이몬'(신적인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 외친 그는 '무지에 대한 지'를 주창하며 영혼의 불멸을 믿었고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모든 권위를 추락시킨 탓에 고소를 당하여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소크라테스의 생사관, 종교관, 법 질서관 등은 플라톤의 저작물인 '변명'과 '크리톤'에서 잘 나타난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진 닭 한 마리를 갚으라."라고 말한 그는 의술의 신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그가 생각한 대로 과연 천국은 존재하고, 그는 지금 천국에 있는가!


서양 철학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소크라테스 죽음 이후 방랑하면서 수학과 천문학의 지식을 쌓아갔다.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에 달린 각주다."라는 화이트헤드의 말은 플라톤의 존재감을 드높인다. 기원전 387에 아테네에 복귀한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설립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곳에서 무려 18년 동안이나 공부한다. 아카데미아는 525년,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폐쇄 명령에 의해 900여 년 동안 존재했다. 플라톤 철학의 중심어는 '에로스'이고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은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 마르실리우스 피치누스가 처음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일반적이었고 성년과 어린 청년의 관계는 장려되기까지 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육체보다 정신을 중요시하며 현실 세계를 가변적이며 불안정하게 본다. 정신은 이념의 세계여서 참되고 영구불변하지만, 현실의 사물은 이데아의 사물 모사일 뿐이다. 선의 이데아는 최고의 이데아이며, 순수한 이성적 사유로만 인식이 가능하다. 절제(생산자 계급, 농부나 어부), 용기(수호자 계급, 국방과 법 집행), 지혜(통치자 계급, 아내 공동 소유, 아이들은 국가 귀속, 50살까지 교육받음)로 나눈 플라톤은 국가의 통치는 철학자가 해야 하고, 통치자와 수호자 계급은 사유재산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학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서양 학문의 개척자이다. 그는 아카데미아 원장은 되지 못하고 리케이온이라는 학원을 세웠고, 7년 동안 알렉산드로스(기원전 356~323) 대왕의 가정교사를 지냈다. 그는 스승의 이데아론을 뒤집어, 현실을 초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의 '형이상학(Metaphysics)'은 자연학 뒤에 배치되었고, 중세 시대부터 초월적 학문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세상은 사물의 본질인 형상과 사물의 재료인 질료로 나뉘고, 형상 뒤에는 네 가지 원인(질료인, 형상인, 동력인, 목적인)이 존재한다. 아무 재료 없는 완전한 능력을 지닌 '순수 형상'이 바로 신이며, '부동의 원자'로도 불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서양 윤리학의 정수이며 '행복'을 중심 과제로 삼은 책이다. 참다운 행복을 보장하는 '중용'은 희로애락의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정신적 및 감정적 균현을 이룬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는 덕을 실현할 최고의 주체이고, '정의'는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을 말한다. 국가 형태는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로 이루었는데 군주제는 독재, 귀족제는 과두제, 민주제는 중우제가 되기 쉽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려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자 사회적 동물이라는 그의 말만큼 진실인 경우도 드물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334~30)에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철학의 양대 산맥이었다. 스토아학파는 제논(기원전 336~264)이 창시한 이래 키케로,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마 16대 황제, 그의 '명상록'은 2천 년 베스트셀러이고 '철학은 삶의 기술'임을 밝힌다) 등이 속하였고 만물에 깃든 신(범신론)이 존재한다 믿으며 자연과 운명에 순종하면서 생사까지도 가볍게 여겼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를 중심으로 유물론을 바탕으로 신은 인간에 관심이 없으니 신에게 경배할 필요 없음을 주장했다. 개인의 쾌락과 고통 없는 쾌락을 추구한 그들은 아타락시아(마음 안정)라는 무욕의 상태에 필수적 욕망만을 원했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운영한 '정원 공동체'는 노예, 여성, 매춘부 등 그 누구도 원하는 이는 받아들였다. 영혼의 평온함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쾌락의 정점이었다. 


9세기부터 14세기는 중세 철학 시대라 부르고 이는 다시 2세기부터 8세기는 교부 철학, 9세기부터 12세기는 초기 스콜라 철학, 13세기는 중기 스콜라 철학, 14세기는 후기 스콜라 철학 시대라 부른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신국론'으로 교부 철학의 아버지로 불렸으며, 교회에 소속된 학교 교사들의 철학인 스콜라 철학은 그리스 철학과 논리를 이용하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중기에 전성기를 맞았고, 완성은 '신학대전'을 쓴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에 의해 이루어진다. 


피렌체 출신이면서 메디치 가문에서 14년 동안 외교관 일을 한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기 위해 '군주론'을 쓴다. 현실과 이상을 분리한 정치에서 도덕을 뺀 그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의 필요성을 그 책에서 역설한다. 그리스도교 정신을 담았지만 이교도 색채 짙은 글을 쓴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은 종교 재판으로 8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결국은 화형 당했다. 1889년 피오리 광장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후세 사람들의 사죄 마음이 드러난다. 범신론이나 윤회론 같은 이집트 자연 종교를 깊게 연구한 브루노는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은 무의미하며 지동설에 이은 우주 생명체 존재를 주장했다.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행동을 한 브루노는 종교 개혁(그리스도교 개혁)의 전주곡을 울렸으리라. 


근대에 들어 '개인'이 철학의 중심이 된다. 부르주아 계급, 계몽주의, 프로테스탄티즘 등이 개인 발전에 기여하면서. 근대 철학의 시작은 데카르트(1596~1650)에서 시작되었는데, 프랑스인인 그는 인류 최초로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탄생한 나라인 네덜란드에서 대부분 지냈다. 정신(우위)과 육체를 분리하면서 이원론을 펼친 데카르트 인식론의 출발은 '의심'이다. 'Cogito ergo Sum',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네덜란드의 탈근대 철학자인 스피노자(1632~1677)는 신학을 비판한 이유로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 당했다. 평생 안경알을 닦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 그는 무신론자에 유물론자 및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범신론 입장을 고수한 스피노자는 '실체=자연=신'으로 생각하고 정신과 육체는 하나로 여겼다. 운명을 사랑하고 감정이나 욕망을 이해하라고 그는 말한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융합을 위해 노력한 칸트(1724~1804)는 '이성'을 해부한 첫째 철학자다. 그의 '비판 철학'은 정신을 사유(인식, '순수이성비판), 의욕(욕구, '실천이성비판), 느낌('판단력비판')으로 구분하여, 복종에서 벗어난 인간이 계몽된 인간이라며 순수이성이 이율배반에 빠짐을 밝혔다. 


칸트와 더불어 독일 관념론의 양대 산맥을 이룬 헤겔(1770~1831)의 '법철학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어둠에서도 진리를 찾고 미래를 모색하는 지혜 혹은 철학)는 황혼 녘에 날개를 편다." 현실이 먼저이고 철학은 현실의 합리화나 뒷받침이라는 의미다. '변증법'은 헤겔의 방법론으로 반복되는 '정반합'이며, 정신의 발달사는 곧 세계사의 전개 과정이다. 이성, 논리, 필연성을 중시하며 논리학과 수학을 가장 확실한 지식으로 간주하는 합리론과, 인식과 지식의 근원은 오직 경험에서 나온다는 경험론의 '중첩이란 얽힘' 역시 인류 정신 발달사가 아니겠는가. 


탈근대 철학의 지존은 바로 '반전의, 전복의 철학자'인 니체(1844~1900)다. 로고스와 이데아 중심적 전통이나 사유를 전복하고 선과 악의 가치 평가에 대한 근본적 해체를 시도한 니체는 절대적 혹은 초월적 진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신(절대 이념)은 죽었다고 말한 그에게는 '초인'(위버멘쉬, 미래의 이상적 인간)이 되기 위한 여정이 있을 뿐이다. 낙타, 사자, 어린이 순으로의 정신의 변화는 이루어진다고 본 그의 '영원회귀'는 인도의 '업'이나 '윤회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염세주의를 넘어 능동적인 니힐리스트를 추구한 니체는 그때그때 자신을 재규정하고자 했다. 니힐리즘 혹은 허무주의는 어떤 원리나 신조도 삶에 들이지 않고 자연화된 인간을 추구하는 것이다.  


철학이 심리학으로 갈무리된 것은 프로이트, 칼 융, 빌헬름 라이히 등에 의해서다. 체코 출생으로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1856~1938)는 신과 이성으로만 인간 본질을 규명하는 것에 반기를 들었다. 억압된 기억이나 충동이 '성 본능'(리비도)과 관련이 있다고 규정한 그는 인간 정신 내부를 이드(무의식, 리비도의 장소), 자아(초자아의 명령에 따라 이드의 성 본능 억압), 초자아(자아를 지배하는 윤리적 영역이나 양심)로 나누었다.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칼 융(1875~1961)은 프로이트를 추종했으나 '성 본능'(리비도)에 대한 견해 차이로 그와 갈라선다. 동양의 사유와 샤머니즘을 적극 수용한 융은 남성 정신의 여성적인 측면을 아니마, 여성 정신의 남성적인 측면을 아니무스로 불렀다. 무의식의 방대한 자원을 활용한다면, 내면을 깊숙이 탐험한다면 창조성은 발휘된다. 


프로이트에게서 버림받은 제자였던 빌헬름 라이히(1897~1957)는 재중의 억압된 충동을 풀어준 파시즘을 파헤쳤다. 그가 만든 '오르곤 에너지' 이론은 프로이트에게 큰 질책을 받았으나, '오르곤 에너지 축적기'를 개발하여 질병 치료에도 응용했다. 결국 1956년, 연방교도소에 수감된 채 마지막을 보낸 그다. 


오스트리아 출생의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파악하는 현상학의 창시자다. 하나의 대상을 각기 다르게 인식하고 의미화되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하는 현상학은 '판단중지'가 필요하고 차근차근 따져보는 과정이다. 과학만능주의는 인간을 하나의 물건처럼 취급한다고 주장한 그는 의식 작용을 '노에시스'로, 의식 내용을 '노에마'로 불렀다.  


나치에 협력한 이력이 있는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존재란 무엇인가'를 파고들어 그동안의 형이상학은 '존재 망각의 역사'라고 말한다. '존재자'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이고, '존재'는 존재자가 존재하도록 만드는 어떤 근거다.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인간(현존재)만의 특성이며 존재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태도는 하이데거가 밝히는 '실존'이다. 세계란 '염려'가 촘촘하게 상호 연계된 관계의 총체다. 죽음은 단호하게 직면하고 세계에 대한 '의견'을 변화시키고 주위의 소중함을 인식하라는 하이데거의 주장이 단호하다. 


헤겔 좌파로 불리며 철학을 사회 혁명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한 마르크스(1818~1883), 파리에서 엥겔스(1820~1895)를 만나 평생 지원을 받는다. '세계의 해석'에서 '세계의 변혁'으로 나아가길 원했던 그는 헤겔의 변증법, 영국 고전 경제학, 프랑스 사회주의 기본 골조 따위를 참고했다. '추상에서 구체로의 상향 방법'은 그가 사용한 방법론이고, 인간의 '소외' 양상 분석에서 출발한다. '생산력' 발전에서 '생산관계'가 걸림돌 될 때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호르크하이머(1895~1973)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간 아도르노(1903~1969)는 그와 함께 1949년 독일로 복귀하여 프랑크푸르트 대학 '사회 연구소'를 재건하고, '계몽의 변증법'을 공저로 출간한다. 계몽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계몽은 야만이라고 책은 밝힌다. 인간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병리적 현상이 만연하여 인간과 자연을 도구로만 여기는 한편, 돈과 권력만이 가장 강력한 원칙이 되도록 만든다. 자연 지배는 결국 자기 자신 통제로 귀결된다. 예술과 대중문화 역시 관리된 사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하여, 자본주의적 시장 논리의 지배를 받는다, 마치 포르노같이. 


미국에 영구 이주하여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 이론을 알린 마르쿠제(1892~1979)는 1960년대 신좌파학생 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인간은 '사물화'(혹은 정신의 표준화) 되고 있고, 1차원적 사유에 머물면서 비판 정신을 잃고 있다는 통렬한 비판이 가슴을 찌른다. 이성 중심적 합리주의 문화의 해체를 주장한 미셸 푸코(1926~1984)는 권력에 순종적인 사람 만들기에 대한 비난을 가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순종하는지에 대한 인식도 없다. 결국은 소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세상이 되었다. 니체로부터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은 리오타르의 저서 '포스트모던의 조건'(1979)에서 시작되어 탈이성, 탈권위,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푸코는 물론 들뢰즈, 데리다 등이 속해 있다.  


진정한 니체주의자이며 '차이의 철학자' 혹은 '노마드의 철학자'로도 불리는 질 들뢰즈(1925~1995)는 '코드화'(삶의 규정과 규칙 지키기), '영토화'(생활 터전에 집착), '동일성(의 사고)'(한 가지 사고에 빠져 타자 배제하는 태도)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늘 새로운 방식(환경)을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할 필요가 인간에게 있다. 영토화, 탈영토화, 재영토화, 다시 탈영토화, 다시 재영토화로 인간의 사유는 반복된다. 


절대로 하룻밤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특히, 일반인들에게는 말이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인류 철학과 사상의 발전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인류가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는 유적이나 유물에는 지대한 관심을 쏟지만, 정신사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면 이율배반적 행동일 것이다.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이 걸려서라도 반드시 읽어볼 만한 내용이다. 앞으로도 이런 책은 꾸준히 읽어 사유의 밭이 황무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개론서만이 아니라 단일 책을 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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