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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Jan 05. 2023

<서평>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 물리학과 생물학의 만남 -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 오철우(배상수 감수, 사계절)


1944년 출간된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해설하는, 2022년 6월에 나온 책이다. 1920년대에 새로운 양자 이론인 파동 역학 발견 업적으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출신 슈뢰딩거(1887~1961)는 유전학과 물리학, 화학의 성취를 정리하며 유전자의 물질 구조와 기능을 물리학 지식과 추론으로 추적하여 유전 물질이 '비주기적 결정' 구조라 예측하는 강연을 1943년 2월에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3번 연속하는데,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바로 그 강연을 다듬어 묶은 책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답은 누구든 제대로 할 수 없다.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가 생물학 관련 내용을 얼마나 풀어낼 수 있을지 모두의 관심을 끄는 건 당연했다.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공간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사건들은 물리학과 화학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 책의 주제이기도 한 이 질문에 슈뢰딩거는 설명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생명의 법칙을 찾아 나선 양자 물리학자의 지적 탐험, 혹은 생명의 비밀에 접근하고자 한 통찰과 탐구 교본으로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가치가 존재한다. 슈뢰딩거의 과감한 과학적 상상과 통찰은 생명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 물리학 법칙이 언젠가는 반드시 만들어질 것이라고 알려준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일반인이 읽기에는 쉬운 책이 아니다. '고전'으로 취급되는 책들이 대개 그렇듯, '생명이란 무엇인가' 역시 이런 설명서 또는 해설서와 같이 읽는다면 책의 가치를 좀 더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저자가 소개하는 슈뢰딩거의 학문 성과와 철학 및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파동 역학을 발견한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과 더불어 양자 이론의 바람을 일으켰다. 엄격한 결정론을 무너뜨리고 어떤 경계나 고정된 부분이 없음을 일깨운 것이다. 그가 내세운 '비주기적 결정'은 규칙적이되 반복적이지 않은 유전 물질 구조를 말하며, 유전 물질이 암호 문서와 같다고 한 '유전 암호 문서'라는 용어는 그가 처음 사용했다. 1940년대는 생화학과 유전학을 결합하면서 분자 수준에서 생명을 이해하려는 분자 생물학이 탄생한 시기였다. 유전 물질을 DNA 분자가 아닌 단백질로 본 것이나, 사람의 염색체 수를 23쌍-46개에서 하나씩 더한 24쌍-48개로 본 것은 발전된 지금의 과학의 눈으로 보면 잘못이다. 하지만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창의적인 과학 활동의 진지함, 과감한 과학적 상상력을 집요하게 펼치는 탐구 정신과 태도와 사유, 물리학과 화학에서도 '생명'은 도전할 만한 것임을 보여준 것 등에 의해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고전의 반열에 올려도 좋을 책이다.  


슈뢰딩거는 서문에서 물리학자로서 '스스로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여러 지식의 통합을 위해 책을 쓴다고 말한다. 생물학의 이론에 정통하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과학 지식은 하나로 통한다는 낙관적 자신감으로 생명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책의 말미에서 나타나는 그의 '일원론', 즉 나와 세계는 본디 하나이며 정신과 물질세계도 하나라는 그의 철학과도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원자 배열에서부터 시작하는 그의 설명은 '통계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의 학문 정신을 잘 보여준다. 유전 물질이 '비주기적 결정'이라는 DNA 분자 특성에 접근하는 대담한 통찰이 이어지면서 비주기적 결정인 유전 물질은 생명 운반 물질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유전과 생명에 관계된 유전 물질(고분자)은 과연 어떤 성질과 구조를 가지고 있길래 유전과 생명이라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문제가 슈뢰딩거에게는 '가장 사활적인 부분'이었다. 물리 법칙은 절대적 엄밀성을 지닌 게 아니라 통계적이며 근사적이라 말하는 슈뢰딩거는 그 이유를 열운동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시로 든 브라운 운동은 원자와 분자의 무작위 운동인 열운동을 보여주는데, 작은 입자가 주위 개별 분자들과 충돌하는 과정이다. 극히 많은 원자로 이루어진 구조에서의 생명 현상에도 마찬가지로 물리 법칙은 작동한다. 작은 유전 물질을 통해 항구적 생명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염색체 때문이며, 그 염색체는 곧 '유전 암호 문서'라고 부를 수 있다.  


체세포에의 유사 분열은 단 하나의 수정란 세포에서 수십 번 분열하여 염색체 암호 문서가 그대로 복제되고, 생식 세포인 정자와 난자에서는 감수 분열이 일어나 부모 세포의 두 벌 염색체에서 한 벌씩 분리되어 2개의 딸세포에 각가 한 벌씩 들어간다. 유전자는 염색체 안에 '특성들의 차이'가 놓인 자리이자 '가설적인 유전 물질 구조'인 것이다. 작고 연속적인 변이는 유전되지 않고, 도약적이며 불연속적인 돌연변이는 유전되는데, 이는 곧 유전자 내의 양자 도약이라고 부를 수 있다. 현대 과학에서는 돌연변이가 유전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어쨌든 돌연변이는 생명종 다양성의 원천이다. 방사선을 이용한 돌연변이 실험은 물리학과 생물학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양자 이론은 아원자 단위에서의 에너지 변화 혹은 계의 변화가 불연속적인 양으로 나타남을 말한다. 양자 도약이 일어나려면 반드시 외부에서 물리량이 공급되어야 하고, 도약에 필요한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이런 문턱 때문에 양자 도약은 불가역적이 된다. 슈뢰딩거가 인용한 델브뤼크의 유전자 모형은 '유전자는 분자'임을 말해주는데, 이는 유전자의 항구성의 이유이며 구조의 차이로 인하여 '비주기적인 결정'이라는 독특한 결정 구조를 보여준다. 사실, 현대적 지식으로 유전자는 분자가 아니며 DNA는 거대한 분자(고분자)이지만 유전자 하나하나를 분자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슈뢰딩거는 유전자가 수없이 복잡하고 정확한 생명 정보를 담은 분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전자 분자의 정교한 에너지 문턱 값은 유전자 안정성의 비결이다. 하지만 이것도 현대에서는 DNA 복구 시스템을 비결로 이해한다. 


우주 만물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나아가며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유기체 생명은 질서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놀라움을 보이는데, 슈뢰딩거는 이런 질서를 '음의 엔트로피' 가설로 이해했지만 다른 과학자들의 비판받는 원인이 되었다. 주위 환경에서 자유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 일부를 열과 엔트로피 형태로 내보내면서 유기체가 질서를 유지한다는 현대 과학과는 다른 내용이다. 물리학이 보기에는 '확률 메커니즘'과는 달리 고도의 질서 정연한 행동 방식 등 생물학의 메커니즘은 완전히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슈뢰딩거는 물리학의 발전으로 인한 새롭게 탄생할 생명 법칙 역시 물리학의 범위를 초월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어쨌든 생명의 유전자 분자는 '신의 양자 역학을 좇아 성취한 가장 정교한 걸작'인 것은 분명하다.  


확률론적이며 불확정적인 해석(일명 '코펜하겐 해석')을 닐스 보어나 하이젠베르크 등이 지지했다면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는 반대했다. '통계-결정론'에 가까운 관점을 슈뢰딩거는 자유 의지와 모순 관계를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의식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말로 서양 전통 관념 체계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슈뢰딩거는 동양 사상을 '수혈'할 필요도 있다고 말한다. 자연법칙을 따르는 내 몸이지만 자유 의지로 새로운 경험이나 기억을 만들어간다고 본 슈뢰딩거의 '일원론'이다. 1953년에는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이중 나선 구조를 확인했고, 1972년에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나와 유전 공학 기반 기술이 되었고, 21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인간 유전자(게놈) 염기 서열 정보를 해독하면서 유전자 편집 기술까지 이루어낸 과학이다. 


여전히 생명 현상의 복잡성은 풀기 어려운 과제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발전 과정은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더욱 심화시킨다. '인공적인' 지능을 만들려면 인간의 지능을 제대로 알아야 하니까 말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쉽지 않은 내용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고전은 시간을 이겨낸 훌륭한 작품이며 그만큼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다. 고전을 읽고 싶어도 너무 어려워서 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런 해설서 혹은 입문서는 커다란 역할을 한다. 고전으로 가는 내비게이션이 되어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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