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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Jan 10. 2023

<서평> 베버리지 보고서

- 복지국가 청사진 - 

<베버리지 보고서> - 윌리엄 헨리 베버리지(김윤태 엮음, 김윤태/이혜경/장우혁 옮김, 사회평론아카데미)


'요람에서 무덤까지, 현대 복지국가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붙어 2022년 11월에 나온 책이다. 원제는 '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 1942년에 나온 이후로 '복지국가의 청사진'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니, 그만큼 복지국가의 토대가 된 보고서란 말이겠다. 국민 최저선, 보편주의 원칙, 완전고용, 사회보장 계획을 강조한 이 보고서의 작성자는 영국의 변호사이자 런던정경대학 총장, 옥스퍼드 대학 유니버시티 칼리지 학장, 하원 의원, 고위직 공무원 등을 지낸 윌리엄 헨리 베버리지다. 당시 클레멘트 애틀리 노동당 정부는 이 보고서에 나온 내용을 대부분 시행했다.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역사적 과제와 씨름한 실천가의 말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 한글 번역본은 원전 내용을 전체가 아닌, 대한민국 사회에서 필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번역했고, 국내 전문가들의 3편의 논문을 보론으로 채택함으로 보고서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평화 시기에나 전쟁 시기에 정부의 목적이 통치자 또는 종족의 영광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행복이다." 이 보고서에 '복지국가'(이 용어는 1941년, 윌리엄 템플 주교가 처음 사용함)라는 말은 없고, '사회보장을 위한 계획'이 곧 복지국가라는 개념과 일치한다. '사회보장'이라는 말은 1935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행정부의 '사회보장법' 제정 이후 널리 사용되었다. 궁핍 해소 목적의 사회보장을 위한 계획은 사회보험, 국가보조, 임의보험을 모두 포함한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사회보험 도입을 시도한 역사적 교훈을 주는 대단한 보고서임이 분명하다.


국민최저선은 사회보험과 국가보조로 최저생계 수준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의미다. '사회보장을 위한 계획'은 궁핍의 진단부터 시작하여 정액 최저생계 급여, 정액 기여, 행정 책임 일원화, 급여의 적절성, 포괄성, 계층 분류를 기본 6원칙으로 한다. 당시에는 소득 능력의 중단이나 상실을 대비한 국가보험은 개선이 필요한 상태였다. 범위를 확장하고 목표를 확대하며 급여 수준을 인상해야 했다. 아동에게는 아동수당을, 노인에겐 부조연금(노인기초연금)이 제공돼야 했고. 


사회보장 계획은 소득의 상한선 이상의 소득자를 제외한 모든 시민에 적용해야 한다. 퇴직연금, 아동수당, 실업급여, 장애급여, 의료비와 장례 비용, 교육훈련 급여, 출산급여, 부양수당, 특별 급여(과부 등에게)를 포함하여 말이다. 연금은 기본적으로 남성 65세, 여성 60세가 지나면 청구가 가능하다. 사회보험은 각자의 수준에 맞는 기여금을 납부해야 한다. 자신과 무관한 기여금에서 급여 상당 부분이 지급된다. 기금이 부족하면 수급자들이 더 많이 내는 건 당연한다. 국가는 보험 가입을 강제할 수 있고, 사회보험은 서로 연대하는 보험이기에 위험에 공동 대응이 기본이다. 


사회보험과 사회부조의 관리는 사회보장부로 일원화한다. 보건부가 모든 치료와 장애를 관리 및 감독하고 가정주부는 하나의 독립적 보험 계층으로 분리해야 한다. 최저생계 소득의 추정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물가 수준을 감안한 급여와 연금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조세는 자산을 고려하지만 기여금은 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 사회보험은 국가보조와 임의보험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사회보장 관점에서는 6개 계층은 다음과 같다. 피고용인, 기타 유급직 종사자, 주부, 기타 근로연령 인구, 근로연령 이하 인구, 근로연령 이상의 퇴직자. 국가보조는 재무부가 직접 부담한다. 


보론의 첫째 주자는 이정우 경북 대학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다.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은 베버리지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국가의 적절한 개입 필요성을 인식한 사회개혁가의 면모를 보였다. 당시는 영국을 포함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사회보장 개혁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산만한 행정과 비효율이 만연한 가운데 베버리지가 위원장이었던 위원회가 발족하여 1년 반 만에 보고서는 완성되지만, 정부의 수정 요청을 베버리지가 거부하자 결국 보고서를 베버리지 단독 이름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베버리지는 보고서를 통해 가장 중요시한 궁핍, 질병, 무지, 불결, 나태의 5대 거악을 제거하려고 했다. 완전고용, 사회보험, 아동수당, 국가보조, 국민보건서비스의 5개로 구성된 보고서는 소득 능력의 중단이나 상실이 빈곤의 사분의 삼이나 된다는 판단으로 빈곤 원인을 너무 협소하게 파악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편성, 의무성, 기여성, 만인 균등성은 사회보험의 기본 원칙이다. 국민적 열광을 받은 이 보고서를 반대한 처칠은 결국 노동당에게 정권을 빼앗긴다. 케인스는 베버리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둘은 고전적 자유방임주의에 반대는 물론 정부의 지나친 개입도 지지하지 않았다. 


둘째 보론은 김윤태 고려 대학 공공정책대학 교수다. 사회정의에 대한 강한 충동을 느낀 베버리지는 사회개혁 의지가 충만하였다.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종합적, 모든 사람들에게라는 보편적, 임금에서 기여금을 납부하는 기여금 제도적인 게 보고서의 큰 특징이다. 베버리지는 지불 능력이 없어도 모든 이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자산조사를 반대했고 모든 노동자에게 기여금을 받게 했다. '복지국가'보다는 '복지사회'를 만들려고 한 베버리지의 보고서는 3시간 만에 7만 부가 팔렸고, 통산 63만 5천 부가 판매되는 인기를 누렸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보편주의'를 가장 강조한다.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전면적으로 지지했고, 1945년에는 아동수당법을, 1946년에는 국민보험 및 산업재해보험법, 국가보건서비스법을, 1948년에는 국민부조법을 잇달아 제정한다. 보편적 복지가 원칙인 복지국가의 원형이 당시 노동당 정부에서 실현된 것이다. 1970년대 들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복지국가 토대는 약화되었고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지만 급격한 복지 축소는 이루지지 않았다.   


마지막 보론 주자는 윤홍식 인하 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부의 불평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가 큰 피해를 보았는데, 그들은 고용보험 같은 사회보장에 제외된 이들이다. 정부의 대응 역시 OECD 국가들의 경우를 비교해 보아도 매우 소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한민국 복지 수준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윤 교수는 이런 상황을 '개발국가 복지체제'라 부르며 공적 사회보장 제도로부터 배제되는 대규모 집단이 발생했다고 보았다. 제도 개선과 촘촘한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보험 확대와 개혁과 더불어 보편적 수당 제도의 도입은 물론 공적부조의 확대도 이루어져야 한다. 2018년 기준, 국민연금에 21.7조를 납부했다면 민간보험에는 34.8조를 납부한 현실이 안타깝다. 케인스의 주장이 1980년대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면 이제 다시 등장하고 있는 현실은 신자유주의의 하락과 함께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다. 


1940년대에 이렇게 세밀하고 면밀한 계획이 한 개인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움을 전한다. 한때 우리는 복지 문제를 보편적인 혹은 선별적인 이분법 문제로 심한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 아마 지금도 여전한 문제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이 가장 심한 소득 불균형 또는 불평등 문제로 시련을 겪고 있다면 이런 보고서를 다시 한 번 검토하면서 심각한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수많은 시행착오는 뻔한 일이다. 부디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 좀 하자. '불평등 공화국'이라는 오명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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