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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Jan 26. 2023

<서평> 조국의 법고전 산책

- 법 고전의 향연 - 

<조국의 법고전 산책> - 조국(오마이북)


'열다섯 권의 고전, 그 사상가들을 만나다'라는 부제가 붙어 2022년 11월에 나온 책이다. 관련 전문가가 직접 읽고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추천하는 책은 무조건 보려 하는데, 딱 마침 이 책을 만났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비주기적으로 오마이뉴스 신문사의 오마이스쿨이 주최한 '조국의 법고전 읽기' 강연을 바탕으로 새로 집필한 책이라 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법속에 살아 움직이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로 세상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 바탕이 된 사상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목에 칼을 찬 채로 컴컴한 터널을 묵묵히 걷겠다'라는 저자의 심정을 밝힌 것에 대해 어떤 사람에게는 비장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비아냥을 느끼게 할 만한 대목이겠다. 어쨌든, 강연체 문장이어서 술술 읽히기도 하는 '법고전'의 향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첫 번째 고전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1762)이다. 프랑스 혁명의 기폭제가 된 이 책은 자유와 더불어 지위와 재산은 상당히 평등해야 한다는 의미로서의 평등을 똑같이 강조하며 사회민주주의의 원류 역할을 한다. 오직 합법적인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에 동의한다는 것은 오직 계약만이 합법적 권위의 토대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계약 사상의 뿌리는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1651)이다. 인민주권론과 혁명권 인정은 존 로크의 '통치론'이 먼저다. 대의제를 불신하고 직접민주제를 옹호한 루소는 추첨 방식이 민주주의 본질에 더 부합하다고 보았으며, 철저한 지방분권을 주장하면서 사형에도 찬성했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1748)은 근대 민주주의 정체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을 최초로 제시한 책이다. '죄와 벌의 올바른 균형'과 시민참여 재판을 강조했으며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만든 몽테스키외다. 재판관은 피고와 사회적 및 신분적으로 동등한 사람이어야 하며 법의 문체는 간단하고 쉬워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정확히 적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존 로크는 '통치론'을 통해 입법권의 한계와 저항권을 제시한다. 인민은 폭정을 무력으로 제거할 권리가 있으며 저항권과 혁명권은 인정되어야 한다. 사회계약의 목적은 생명, 자유, 자산의 보존이다. '통치론'은 명예혁명(1688년)을 정당화하거나 혹은 고민한 산물로서, '통치에 관한 두 논문' 중 '시민정부의 참된 기원, 범위 및 그 목적에 관한 시론'을 말한다. 전제군주의 권력은 제한되어야 하고 군주와 의회는 타협해 권력 분점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홉스의 절대군주제에는 반대하고 황권신수설도 부정하며 입헌군주제를 꿈꾼 존 로크다. 정부의 목적은 인민의 복지임을 주장하며 '노동가치설'을 주장한 마르크스의 이론적 기초를 이룬 그이지만 유럽의 식민 지배에는 눈을 감았다.  


'근대 형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1764년)은 죄형법정주의를 확립한 형사법학에서의 불멸의 고전이다. '종교적 죄악'과 '범죄'는 구분되어야 하며 고문을 금지하고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입법 목적은 범죄 처벌보다는 예방을 위해서이며 형벌은 확실성이 생명이다. 또 하나의 법의 목적은 '최대다수에 의해 공유된 최대의 행복'이어야 한다는 것은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형벌은 범죄에 비례해야 하고('비례성의 원칙') 형벌이 잔혹해질수록 범죄는 오히려 더 잔혹해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토머스 페인의 '상식'과 '인권', 알렉산더 해밀턴과 더불어 제임스 매디슨과 존 제시의 공저인 '페더랄리스트 페이퍼'는 소수자 보호와 사법통제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미국의 독립과 합중국 수립에 사상적 기초를 놓았다. '상식'과 '인권'은 법치를 강조하고 사회 귀족을 비판하며 민중을 위한 복지 강화 등의 사회대개혁을 주장한다. 현대 정치학과 헌법학의 기초가 된, '건국의 아버지들'의 저작인 '페더랄리스트 페이퍼'는 입헌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야심에는 야심으로 대항해야 한다." 정치적 파벌은 막을 수 없지만 조정이나 치료되어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말하면서 진보적인 자유주의의 기초를 놓는다. 사상과 토론의 자유, 정치적 및 사회적 자유는 얼마나 중요한가. 자유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의 한계를 설정한 밀은 의식의 내면적 영역, 취향과 탐구, 단결 같은 세 가지 자유를 주장한다. 권력의 억압과 여론과 감정의 억압으로부터 소수자는 보호되어야 하고 세상의 무오류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곤란을 초래하며, 세상의 확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독단 역시 위험하다. 마약을 하는 사람보다는 마약을 판매한 사람을, 성매매를 한 사람보다는 포주를 처벌해야 한다는 그의 '비범죄화주의'는 형사처벌보다 사회정책의 역할을 중요시한 결과다. 


법은 '사회적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고 권리는 '법적으로 보호되는 이익'이라 정의한 '권리를 위한 투쟁'(1872년)은 루돌프 폰 예링의 저서다. 우리는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사가 되어야 하고 권리 침해에 대한 저항은 우리의 의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사법의 불법은 시민의 불법보다 더 크다고 그는 보았다. "권리가 자기의 투쟁 준비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권리는 스스로를 포기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크리톤'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시민불복종 법사상을 밝힌다. 그는 스승의 죽음에 대해 중우정치나 폭민정치로 가는 민주정을 비판하고 '엘리트 과두정치'를 선호한다. 친스파르타 정권인 '30인 참주'를 타도한 민주정인 트라시불로스 정권이었다. 멜레토스, 아뉘토스, 뤼콘, 이 세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이들이며, 500명의 배심원이 배심 재판으로 나섰다. 사형 선고를 받아 감옥에 있던 소크라테스에게 친구인 크리톤은 탈출을 권고했지만 불의와 악의 보복은 안 된다면 거절한 그다. 국법과 재판 절차는 존중하며 배심원의 평결이 불의했음을 주장한 것이다. 


지식인이나 철학자의 사명을 강변하면서 말 등에 붙은 '등에'처럼 계속 자극하는 역할을 감당하고자 했던 소크라테스는 280 대 220으로 유죄를, 360 대 140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그 결과를 당당히 받아들인다. 배심원들에게는 저주를 퍼부으며 자신은 현자가 될 것이라 말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경성제국 대학교수를 지내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는 도쿄 대학교수로 있었던 일본의 법철학자인 오다카 도모오가 1937년, '법철학'이라는 책에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취지로 소크라테스의 법사상을 요약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 그런 사상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1849년)과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은 모두 시민불복종에 관한 명저들이다. 소포클레스의 희곡은 인간과 왕의 법보다 신의 법과 정의가 우월함을 드러낸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가 죽고 난 후 외삼촌인 크레온 왕과 갈등을 겪는다. 결국 안티고네는 감금된 동굴에서 목매달아 죽고 크레온 왕의 아들인 하이몬과 왕의 아내인 에우리디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소로는 불의한 법에는 불복종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노예제를 유지하는 악마적 권력에의 무장투쟁은 당연한 것으로 보았다.    


존 브라운(1800~1859)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강행했다. 연방군 조병창을 습격하는 과정에서 추종자 12명과 함께 해병대원 1명이 사망하자, 1859년 교수형에 처해진다. 미국 역사상 반역죄 처형의 최초 인물이다. '존 브라운 시체'(John Brown's Body)라는 노래는 존 브라운을 기리며 남북전쟁 당시 북부 연방군의 군가로 불렸다. 이후 개사된 노래가 'Battle Humn of the Republic'(한국 개신교 찬송가, '마귀들과 싸울지라')이다.   


'John Brown's Body'


John Brown's body lies a-moldering in the grave

                                     "

                                     "

But his soul goes marching on

Glory, Glory, Hallelujah

                   "

                   "

His soul goes maching on

The stars above in Heaven are looking kindly down

                                           "

                                           "

On the grave of old John Brown

Glory Glory, Hallelujah

                    "

                    "

His soul goes marching on

H captured Harper's Ferry with his ninteen men so true

He frightened old Virginia till she trembled through and through

They hung him for a traitor, they themselves the traitor crew

But his soul goes maching on

Glory, Glory, Hallelujah

                     "

                     "

He's gone to be a soldier in the Army of the Lord

                                          "

                                          "

Glory, Glory, Hallelujah

                    "

                    "


토머스 호벤튼의 그림 '존 브라운의 마지막 순간', 2020년 영화 '더 굿 로드 버드'. 소로는 브라운을 지지한 연설문인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에서 그를 적극 옹호한다. 그는 세속 법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저항했다고, 그리고 그는 최고의 미국인이었다고! 당시 동정 언론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마틴 루서 킹이나 간디 등은 소로의 '시민불복종'에 큰 영향을 받았다. 


법고전의 마지막 책은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 평화론'(1795년)이다. 칸트는 책에서 영구평화를 위한 '예비조항' 6가지와 '확정조항' 3가지를 제시한다. 국제연맹과 국제연합 및 유럽연합 설립과 그 역할의 사상적 기초가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크나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저자의 책을 읽었다. 무엇보다 '고전'을 소개하기에, 법에 대한 '고전'을 소개하기에 덥석 잡아 읽은 책이다. 저자의 공과는 뒤로하고 법고전 자체의 무게에 눈길이 갔다. 이 즈음에 다시 한 번 법에 대한 옛 교훈을 상기하고자 한다. 기원전 6세기 경 로마의 솔론이 성문법을 제정하여 시민의 불의와 탐욕을 제어할 수 있었다고 믿었지만, 아나카르시스는 그러한 솔론의 믿음을 비웃었다. 성문법이란 거미줄 같은 것이어서 약하고 작은 것이 걸려들면 붙잡을 수 있어도 힘 있고 돈 있는 자가 걸려들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주장한 것이다. '법은 거미줄이다', 이 말은 현대에도, 대한민국에서도 통하는 말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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