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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Jul 29. 2023

[엄마, 안녕] 20. 단무지 두 개

글을 마무리 지으며

그날은 외숙모의 부고 소식을 들은 다음 날이었습니다.

작년 엄마를 시작으로 올 2월에는 외삼촌이, 6월에 또  외숙모의 부고 소식을 들으니,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성격 급한 엄마가 숙환으로 고생하셨던 외삼촌과 치매와 뇌종양을 앓고 계시던 외숙모를 서둘러 데려가셨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외삼촌을 어릴 때는 자주 못 뵈다가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 한 번씩 뵈러 갔었죠.

외삼촌은 무뚝뚝하셨습니다. 그런 외삼촌이

"글~씨~~, 긍~께~~"

 말을 시작하시는데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말을 길게, 한참을 늘여서 하다 보니 한 문장을 다 말하는데, 1분은 걸린 듯 느껴져서 너무 웃기기도 하고 '아, 충청도의 느림이 이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엄마는 말이 굉장히 빨랐는데, 같은 형제도 참 다르구나 싶기도 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저는 말을 길게 늘여서 하는 외삼촌이 친근한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외숙모는 늘 더 챙겨주시려고 애쓰고, 따뜻하게 웃으며 맞아주셨습니다. 

자주 뵙지는 못해도 외삼촌과 외숙모는 고향 같았습니다.

엄마, 외삼촌, 외숙모의 연이은 죽음은 나를 보살피고 감싸주던 세상이 사라진 듯했습니다.


외숙모의 장례식은 정산에서 진행되고 있었지만, 저는 막바지 연습을 위해 연습실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보지 못하는 죄스러운 마음과는 상관없다는 듯 다시 또 배가 고프고, 연습을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지하철역을 나서자 떡볶이를 파는 곳이 눈에 들어왔었습니다. 전 떡볶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 중에 떡볶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혹시 먹을까 싶어 연락을 했었지요. 그런데 그날은 이미 다들 식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먹어야겠구나.


저만 허기를 채우면 돼서 간단하게 뭘 먹을까 고민하면서 길을 걷는데, 김밥집이 보였습니다.

김밥을 좋아해서 별 고민 없이 들어갔습니다. 한창 유행이 지난 프랜차이즈 김밥집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벽마다 메뉴 소개가 가득했었습니다. 메뉴가 이것저것 많은 곳은 맛이 썩 좋지 않았던 경험들이 떠오르며 들어서자마자 후회를 했었습니다. 테이블은 5개가 전부였고, 그중 두 곳은 남자 손님이 각각 앉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문신을 한 젊은 남자였는데, 이미 국수를 먹고 있었지요. 다른 남자는 중년으로 보였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방에는 나이 지긋한 여자 사장님이 계셨습니다.

전 들어가며 가장 만만한 참치김밥을 주문했습니다. 주문을 받은 여자 사장님은 한동안 사라지더니 어디선가 국수 한 주먹을 쥐고 나타나서 면을 삶았습니다. 아마도 중년 남자가 국수를 시킨 모양이었습니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 여자 사장님은 김밥을 말았습니다. 거의 다 말았을 때 노년의 어떤 남자가 들어오더니 여자 사장님과 말을 주고받고 김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남편분인 듯했습니다. 그리고 여자 사장님은 다시 국수를 삶으러 가셨지요.

젓가락을 꺼내서 김밥을 먹었습니다.

아... 맛이 없었습니다.

워낙 김밥을 좋아해서 웬만하면 다 맛있는데 말이죠. 그때 사장님 남편분이 된장국을 가져다주었습니다.

5천 원짜리 김밥에 어울리지 않게 멸치로 육수를 내고 집된장을 풀어 무청을 넣어 만든 된장국이었습니다. 김밥에 비해 정성이 너무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김밥을 먹는데, 사장님 남편분이  단무지를 가져다주셨습니다. 김밥 먹을 때 굳이 단무지를 먹지 않기에 괜찮다고 하려는데, 이미 가버리셨습니다. 그리고는 김치도 가져다주셨습니다. 김치는 직접 담근 것은 아닌 듯했습니다. 그래도 김밥에 비해 찬이 너무 많게 느껴졌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생겨서 단무지도 먹고 김치도 먹었습니다. 된장국도 한 모금 마셨더니 맛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렇게 먹다가 단무지가 1개 남았을 때, 사장님 남편분이 단무지 2개를 더 얹어주셨습니다.

"됐어요."

라는 말이 나오려다가 쏙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울컥했지요.

단무지 2개가 뭐라고...


갈치, 고등어.

이런 거 먹을 때, 엄마는 가장 맛있는 부위를 제 접시에 놓아주셨었죠.

제가 생선살 발라주면 괜히 화도 내셨었어요.

저 먹으라고.


누군가의 챙김을 받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낯 모르는 사람에게.

더구나 외숙모가 돌아가신 이때에.

그 챙김이 너무 감사해서 주신 단무지도 다 먹고 일어섰습니다.



사랑하는 엄마를 보내고 제 삶은 소소하게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잘 때, 문을 닫았는지 다시 확인하기도 했고, 집을 나설 때도 문을 닫고 나왔는지, 가스불은 껐는지 불이 켜진 곳은 없는지, 수도를 틀어놓고 나온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떨쳐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전에는 집에 엄마가 있으니, 아무 관심도 없던 일들이었는데 말이죠. 이제 문을 닫았는지 불을 껐는지에 대한 불안은 없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에도 선풍기를 껐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가 집으로 돌아온 적은 있었습니다.

혼자 뭘 해먹기도 힘들고, 재료를 사면 다 쓸 수도 없어서 음식을 잘하지 않게 됩니다. 양배추 한 통을 사서 한 달을 먹기도 하지요. 음식을 잘하지 않으니, 버리는 음식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샐러드를 주로 먹다 보니, 생각지 못한 다이어트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엄마의 음식에 익숙해져서 조금 더 지나면 음식을 하게 될 거라고 주변인들은 말하는데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TV소리, 라디오소리가 아니면 말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간혹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 그때 비로소 말을 하게 됩니다. 아직 혼잣말의 경지까지는 못 간 듯합니다.


소소한 변화 중 아직도 어려운 것은,

쉽게 쉽게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허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면서 마음을 짓누르던 죄책감과 후회와 슬픔과 그리움을 토해낼 수 있었습니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이, 글이 아니라 배설로 느껴지고, 넋두리처럼도 느껴졌습니다.

몇 해 전, 연극치료를 공부할 때, 상담의 첫 시작은 내담자가 말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곳에서 제 얘기를 하고,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나름 치료의 과정을 겪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실은, 더구나 같이 생활하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상실의 크기는 너무도 큰 거 같습니다. 아직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마음이 허방을 짚 듯 헤맬 때가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벌써 7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저를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분은 그것을 '제게 인복이 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거 같습니다.


브런치의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과 라이킷을 눌러주신 분들, 구독해 주신 분들이 모두 제 '인복'인 듯합니다.

감사했습니다.

글을 쓰는 데 큰 용기가 됐고, 단무지 2개처럼 울컥하고 따뜻했고, 견딜 힘이 되었습니다.


간혹 지금 큰 고통에 있는 분들이 제 글의 제목만 보고 의료적 지식을 구하고자 왔다가 도움이 못 됐을 거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더 많은 정보로 좋은 선택을 하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엄마, 안녕]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더 잘 이별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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