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써 내려가는 글쓰기는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읽어주는 너무나 감사한 대상자가 이해를 해 주고 흥미롭게 생각하면서 공감까지 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관련하여 글쓰기 책자들을 접해 보았으니 쉽게 도움이 되진 못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책을 발간하는 작가들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나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충동만은 글을 쓰기에 충분하였다. 세상 살아온 흔적을 다시 되돌아보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남들보다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과 끊임없이 재잘거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재잘거리던 말 들을 글로 옮겨 적기에는 나의 언어력은 많이 부족함을 체감하였다. 멋지고 수려한 글로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실력은 턱없이 부족하였으며 노력을 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담백하고 편안하게 적어가기로 했다. 쉬운 단어, 내가 표현하기 쉬운 말들로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번 들여다 보고 다시 작성하기보다는 마음이 통하면 뒤돌아보는 것 없이 거침없이 자판기를 두들겼다. 나의 삶을 적고 싶었으나 자서전이나 흔적을 남길만한 삶이 아니기에 글의 구성을 고민하였다.
두 글자라는 단어 속에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스며들듯이 표현하려 했다. 조금은 색다른 방식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스스로 만족하기도 하였다. 단어별로 생각나는 말들이 있으면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갔다. 읽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서게 될지 예측할 수 없으나 써 내려가는 나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움과 성취감이 공존하는 재미난 과정이었다.
작가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박사학위를 받고 주변에서는 약 올리듯 김박사라고 나를 호칭한다. 오십 대에 받은 감사한 별명인 셈이다. 학문에 전문적이고 뛰어난 학설을 만들어내어 토론하고 강의하며 주장하는 노교수의 박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삼십여 년을 종사한 분야에 실무와 학설을 겸비한 능력이 작은 박사는 되고 싶었다. 석사과정까지 합치면 거의 11학기를 다녔다. 이러한 석사와 박사과정의 리포트 작성과 논문에 대한 과정들이 나에게 글쓰기라는 호기심을 선물하였다. 하지만 김박사라는 별칭보다는 김작가라고 불리고 싶다. 김박사는 테두리 안에서 열정을 쏟아 노력한 이미지로 느껴지지만 김작가는 무언가 창의적인 것 같고 자유로운 지식인으로 느껴진다. 50여 개월의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 김작가라는 새로운 호칭으로 불리고 싶은 마음에 앞 뒤의 맥락도 맞지 않고 작가로서의 기본 소양도 없는 막무가내 글을 쓰고 이렇게 모으게 되었다.
흔적을 남긴다. 흔적들은 더 큰 발자취를 향해 갈 것이다. 늦게 시작하여 새로운 취미처럼 전문분야에 접근하고 있지만 방향성만은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읽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어서 글을 적는 것이다. 언어수집가처럼 다른 책을 기웃거리고 다른 이의 말들에 더욱 신경 쓰게 될 것이다. 기록을 남기는 것처럼 거창하진 않지만 자그마한 흔적은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즐겁게 허털한 웃음을 날릴 수 있는 가벼운 드라마 작가도 되고 싶고, 쉬운 노랫말의 트로트 가사의 작사가로도 도약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좋아하고 관심 많은 역사물에도 글이 쓰이고 싶은 마음이다. 뭐든 시작하고 조그마한 마무리를 하면 늘 욕심을 부리는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내일은 꽃을 보러 남들과 다르게 북쪽으로 올라가 보려 한다. 어느덧 꽃을 보러 가는 나이가 된 것인가? 아니면 꽃을 바라볼 정도의 삶의 여유가 생긴 것인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바다와 꽃들 속에서 늙어가면서 변해가는 나를 야단치고 독려해 보아야겠다.
부족한 글을 마무리한다. 간신히 맞춤법을 맞추어서 정리를 한 수준이다. 그저 내 마음이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수준에 감사하려 한다.
2026년 4월 초에 김현우(기억 첨벙, ㄱ첨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