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작.
오십여 년을 돌아보면 수작을 거는 삶이었다. 모든 도전은 일종의 수작이었다. 그로 인한 찬란한 결과는 인생의 최대 수작이었다. 수작과도 같은 작은 노력이나 장난으로 시작한 일들이 결국에는 인생의 묘미와 별미가 되었다. 때로는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시작했던 일보다 더 큰 깨달음과 변화를 줄 때도 자주 있었다. ‘수작‘이라는 말은 수작질을 건다는 표현으로 인해 가볍고 상서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빼어난 작품에 대해 최고의 ’ 수작’이라고 표현할 때도 있으니 양면성을 가진 나에게는 호감이 가는 단어이다. 갈등 없이 유순하게 살고 싶고, 자녀나 동료, 그리고 선배들이 웃을 수 있다면 서슴없이 망가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나로서는 때로는 가볍고 우습게 만만하게 보일지라도 돌이켜보면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기를 희망하고 있으니 수작이라는 단어에 친밀감이 있다.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영화를 보면 마음에 남는 명대사가 있다. “우리 합주단은 각자 소리만 내려고 노력한다. 제발 혼자만 멋진 소리를 내려는 이기심을 버려라. 연주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하는 것이다. 연주는 서로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 지나간 일들을 회상해 보면 나만의 소리를 내기에도 급급하였다. 나만의 소리를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안달을 하고 이곳저곳에 수작을 걸었다. 주변의 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호흡을 맞추어 나갈 마음의 여력이 부족하였다. 승진하고 싶었고 성공하고 싶었으며 조그마한 명예와 재력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인정욕구에 가득 차 있었다. 여자친구를 만나고 애인이 되어가며 결혼을 약속하는 과정도 그리하였다. 이제라도 서로의 소리를 듣기 위해 애를 써야겠다. 오십여 년을 나의 소리만 귀 기울였으니 남은 오십여 년은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충분한 내 인생의 수작이 되리라!
예쁜 꽃이나 수려한 나무를 보면 항상 오랫동안 그 자리, 거기에 있기를 소망하게 된다. 언제나 생각이 나서 찾아가면 만나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주변에 자랑하고 안내를 해 주어서 멋진 사진들을 찍어서 보내올 때면 내 마음도 그 사람을 위로해 준 것 같아서 기뻐지곤 한다. 예쁜 꽃이나 수려한 나무처럼 글을 쓰고 싶었다. 글 쓰는 재주는 부족하지만 미사여구도 부족한 담백한 글을 통해 내 마음을 표현하는 조그마한 수작질을 부리고 싶다. 책이 되어 발간되고 비슷한 사람들이 돌려 읽으며 공감한다면 또 다른 삶의 수작이 될 것이다.
글 쓰는 수작을 부리는 행동을 하는 것에는 많은 고민과 염려가 필요했다. 일단은 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과연 글을 쓰는 재주도 없는 내가 나의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어보려 애를 썼다는 지나온 발자취와 남들보다는 조금 나은 말재주,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수시로 작성했던 보고서의 힘에 기대어 용기를 내었다. 겨울에 꽁꽁 언 땅을 갈아엎지 않고서는 좋은 씨앗을 뿌릴 수 없듯이 포기만 하려는 내 마음속 겨울을 갈아엎기로 했다.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작성해야만 했던 일 년여의 논문 작성의 기간이 나에게 글을 써 볼까 하는 용기를 심어 주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닫히기만 하는 마음들을 조금씩 열어 놓기 위해 글이라는 수작을 통해 애를 써 보려 한다.
내 인생 최고의 수작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사랑하는 아들 세명과 한 명의 딸을 만난 것일 것이다. 네 자녀와의 삶은 항상 행복하고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는 최고의 선택이자 수작인 나의 아내와의 만남일 것이다. 아내와의 만남은 어떤 친구보다도 그리고 나의 부모님보다도 더 훌륭하고 감사한 신의 선물이다. 나와 똑같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함께 생각하고 같이 즐기며 똑같이 먹는 모습들이 든든하고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물론 가끔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지만 아플 틈도 없이 그 간극은 메꾸어진다. 맞다! 내가 있는 자리, 내가 앉은자리가 꽃자리임에 틀림이 없다.
사무실이 변경되고 헤매던 일주일이었다. 같은 직장임에도 일하는 분야와 사무실이 달라진 것만으로도 어색하고 담당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커진다. 요즘은 새로 배워야 할 시스템이 너무 많다. 앞으로는 AI로 대체된다고 하니 지금 이렇게 역할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맘에 드는 사람도 있고,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이 있음을 알면서도 순간 생기는 판단과 갈등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너무 의지되고 그리울 것처럼 굴던 동료도 떠나오면 그저 카톡으로 안부를 전하고 전화통화로 위로하는 정도로 멀어지게 된다. 물론 얼굴만 봐도 카톡 한 단어에도 지나온 추억의 역사에 의한 반가움으로 나의 심장을 뛰게도 하지만 그것 역시 순간인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동료로 여기고 또 다른 삶을 시작해 본다. 약간의 긴장감과 지나친 책임감으로 짓눌린 하루가 지난다. 낯선 환경에 피곤해서 있지 깊은 잠이 든다. 하루 종일 일을 배우기 위해서 그리고 어울리기 위해서 수많은 수작을 걸었다. 마술과도 같은 수작을 부렸다.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의 모습으로 어필하는 수작, 마음 좋아 금방 어울릴 수 있다는 희망을 수는 수작, 전혀 까다롭지 않고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혼돈의 수작을 부렸다. 이러한 수작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되돌아오기를 희망하면서 순간순간들을 대처해 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마당을 쓸었습니다라는 시구처럼 하루를 보냈다. 마당을 쓰는 작은 행위가 지구의 한 모퉁이를 치유하고 꽃 한 송이 피어나게 도와서 지구를 아름답게 한다는 그 시는 내가 초라해질 때마다 수작을 부릴 용기를 주곤 한다.
어느새 따뜻한 봄이 오고 꽃 소식이 전해진다. 이번 봄은 유난히도 춥다. 겨울 양복을 벗어던지기엔 아침과 저녁이 쌀쌀한 바람으로 기세를 부린다. 남쪽부터 피어 올라오는 꽃들이 나에게 유혹의 수작을 건다. 멀리서 바라보는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한 꽃의 향연은 나의 눈을 너무 즐겁고 행복하게 만든다. 나에게 꽃은 자세히 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예쁘다. 아직 삶의 깊이를 충분히 느끼고 사색하지 못하고 수작 부리듯 얕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최고의 수작인 아름다운 꽃들과 늙지 않는 바다를 보러 이번 주말에도 잠시 떠나봐야겠다. 비소식이 있다고 한다. 해가 떠도 비가 와도 무엇이 대수인가! 수작과 상면하는 순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