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를 잊고 망각하면서 산다. 안 좋았던 기억은 모두 거두어 내고 좋은 일만 기억하면 좋을터인데 안 좋았던 일들을 망각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문뜩 당황스럽도록 떠오르는 것들은 좋지 않았던 추억들일 경우가 많다. 나의 소심한 성격이리라 자책해 본다. 예전의 나와 비교하면 얼마나 행복한 위치에 있는가! 그 감사함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더우면 시원한 곳에서 추우면 따뜻한 곳에서 의자에 앉아 정해진 날짜에 월급을 받고 아이들과 아내와 식사를 하고 떨어져 있는 어머니와 장모님께 안부를 전하는 이런 삶이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망각하면서 잊어가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적절히 망각하면서 살아갈 날들이 내 앞에 서 있다. 어떤 영화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을 것 같아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사진첩이나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꽤 유명한 배우의 언행에 조금 놀라움을 느꼈다. 추억이 있다고 생각되는 물건들과 사진, 그 시절의 추억 같은 이야기들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고 산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었다. 그래 이제는 망각해야 할 시절이다.
망각은 기억의 흔적이 서서히 지워져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망각으로 인해 때로는 아픔을 덮어주고, 때로는 소중한 것을 잊게 해 주어서 우리의 삶을 조금은 가볍게 만든다. 만약 자기만의 시간이나 열정에만 빠져있고 망각하지 않는다면 같은 세상 속에서도 다른 시간에만 살아가게 될 것이다. 특히 험담 형식을 갖춘 잔소리 같은 이야기들은 반드시 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나를 비난하고 나에게 불편함을 가져다준 사람들을 지금이라도 모두 망각하고 싶다. 미움은 복수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망각으로 해결된다고 하는데 망각이라는 숙제는 나이가 늘어감에도 아직 달성하지 못한 미완의 모습이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느슨한 아침이 너무나 평화롭다. 내가 회사를 다니던 사람인가를 망각하게 한다. 이불에서 뒤척이다가 게으름을 피워도 시간에 여유가 있다. 주말 아침보다는 모두가 출근하는 평일의 느낌은 공짜로 무언가를 얻은 기분이라 더욱 기분이 좋다. 이런 사소한 것들도 살아가다 보면 회사의 일을 잠깐 망각하면서 받게 되는 감사한 선물이다.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짧은 아침 일상만으로도 행복함은 가득하다. 출장을 떠나던 날도 일상으로부터 탈출 같은 묘한 찡함이 있다. 보너스 월급을 받은 날과 같은 하루를 출장은 선물한다. 새로운 정책을 이야기하는 출장지에서 또 다른 변화와 개선에 대한 노력을 위한 다짐보다는 그저 졸음의 향연이다.
졸음과 휴식을 만끽하는 참석자 사이에서 사회자, 아니 진행자 홀로 악전고투이다.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생각하던 중 진행자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제목은 의견수렴이란다. 모두 정해놓고 전달하면서 개선을 할리 없다는 생각이 팽배한 분위기 속에서 마구 지적질을 해대면서 의견을 내던지 현장 사례라도 이야기하란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무슨 사례를 이야기할까? 기분 나쁘지 않은 내용으로 적절하게 넘기면서 출장시간을 마쳐야겠지. 아니야! 그건 비겁한 처세야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드디어 일이 터졌다. 침묵하는 청중들을 건드린 것이었다. 일벌처럼 보이지만 뱃속 깊숙이 말벌의 침을 아니 코브라의 독을 품고 있는 조용한 침묵자를 건드린 것이었다. 이곳저곳에서 현실이나 알면서 이런 세미나를 하는 것이냐는 현장의 불만사례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왔다. 공감 때문일까? 아니 공유한 결과일까? 묘하게 기분이 좋고 만족감이 밀려들었다. 누구나 생각은 비슷하다. 그래 이건 아니지!
망각하면서 살 수는 없어도 미래를 다짐하는 반성의 글이라도 매일 적어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소재와 동기부여가 없어서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라디오 DJ는 오프닝 멘트를 매일 작성하여 방송하던 것들을 모아서 책을 발간했다고 한다. 성실함과 인생을 대하는 섬세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어느덧 반백년의 삶을 훌쩍 넘기다 보니 인간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사람을 좋아했었다. 함께 나누는 대화, 웃음, 분위기, 정겨움에 취해 살았었다. 기쁨과 함께 갈등, 배신, 반목이라는 선물도 받았다. 그로 인해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발전해 나 기기도 하며 움츠려 들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계속적인 숙제이자 물음이 인간관계일 것이다. 인간관계는 꼭 변덕스러운 날씨 같다. 스산했던 저녁 밤시간이 어느덧 무더워서 힘겨울 정도이다. 추워서 싫고 더워서 별로라는 말처럼 뭐 하나 맘에 드는 게 없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이토록 살아왔지만 정답과 방향을 모르겠다. 그저 무난하고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탈한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내기를 소망하는 것뿐이다. 제발 나에게 지나친 관심과 질투를 갖지 말고, 내 얘기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칭찬도 필요하지 않다.
이젠 그냥 무관심과 망각을 희망한다. 그런 나이가 된 걸까?
어느 유명배우의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보면 1983년부터 2024년까지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덧 망자가 되어버린 배우 김수미는 매일 아침에 일기를 기록에 남기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이 책으로 발간되어 다시 가족들에게 돌아가셔서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인다. 살아생전에 가족에 대한 헌신은 하늘나라로 가신 후에도 계속된 헌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그 삶의 무게가 안타까움으로 느껴지며 지금 내 모습에서도 공감을 하기에 충분하다. 망각하지 않은 꾸준한 기록은 묶음 책자로 탄생한다. 물론 작가에 대한 인지도와 좋은 글귀도 한몫을 할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급하다. 무언가 충실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살아가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해야겠지만 정작 무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주말을 기대하고 저녁의 자유로움을 기다리면서 지금 이 시간들을 지나친다. 회의에 참석하고 사람을 만나고, 아는 이와의 통화를 통해 일상의 평범함과 지루함을 토의하면서 지금 숨 쉬는 순간들을 위로해 본다. 바르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이렇게만 계속 나아가자고 독려해 본다. 바른 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삶이 또한 나의 기쁨일 것이라고 안도해 보면서 하루를 보내본다. 친절하자! 그렇지만 늘어지지 말고 신속하자! 아울러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이 또한 적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어울리는 사무실에서 또 머리를 갸우뚱 거린다. 그래! 그냥 망각하자! 열심히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살았다면 가끔은 잊자! 내려놓고 돌려보내서 마음속이 아닌 깊은 망각의 터널로 차고 차곡 쌓아두고 또 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