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성찰의 두 글자-비밀

by 김현우 ㄱ첨벙

비밀이라는 말이 좋다. 비밀이라는 단어가 주는 은밀함이 있다. 비밀은 무언가를 소중하게 공유하자는 주문을 의미하는 것 같아 설렘과 함께 한다. 비밀을 나누는 사이라고 말하면 그 무직한 암묵의 친근함을 느낄 수가 있다. 비밀은 나만이 소유하고 있는 특별함이 있다. 비밀 같은 마음속 깊이 감춘 작은 이야기들은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무겁다. 비밀은 지킬수록 관계를 지키는 신뢰가 되고,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 비밀을 알지 못하면 혼자만 소외된 것 같고, 어떤 단체생활에서는 비주류로 밀려난 느낌을 받는다.


어머니는 군생활동안 내가 휴가를 전혀 나오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군대를 제대한 지가 30여 년이나 지났지만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고 어머니가 궁금해하지도 않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비밀이 되어버렸다. 내가 군대 간 지 6개월여 만에 첫 휴가를 갈 수 있었다. 반년만에 세상 구경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였다. 하지만, 소대별로 치킨과 음료수, 담배 등을 사서 복귀해야 했고 각 선임들이 사가지고 와 달라고 부탁한 물품도 있었으며 다음 휴가를 나가기 위한 차비 등 일정한 액수를 기탁도 하여야 해서 돈이 꽤 필요한 상황이었다. 부조리가 많았던 시절이라 그 부당함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준비성이 있던 성격이었기에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휴가 복귀에 필요한 돈을 줄 수 있는지 미리 물어보았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휴가를 나오라는 어머니와 연년생 여동생의 말만 믿고 기쁜 마음에 4박 5일이라는 휴가를 보내던 마지막 밤에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십만 원 정도 줄 수 있는 거지?” 이에 어머니와 여동생은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내밀며 더 이상의 돈은 준비하지 못했으니 조용히 군대에 복귀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부대 행정반에 다음 휴가를 위해 맡겨놓을 돈만 오만 원이고 7개소대에 통닭과 음료수를 사면 이미 십만 원이 필요했으며 담배와 부탁받은 물건과 잡지들의 구매, 부대까지 가는 차비까지 아무리 절약하여도 최소 이십만 원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난감함과 답답하여 미칠 것 같던 심정과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내 가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만원씩 앵벌이를 시작하였다. 군생활을 하는 친구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모인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부대를 복귀하였다. 부대로 향하는 차 안에서 다시는 휴가를 나오더라도 집으로 가지는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후 제대하는 순간까지 휴가를 나와도 집에는 가지 않았다. 조교부대라 휴가를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대답해 버렸다. 나의 군생활에 무관심했던 어머니와 여동생은 부대에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거나 누군가에게 항의하는 일이 없었기에 당시에도 상황을 알지 못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무관심하다. 어쩌면 그 순간들이 세상 속에서 강한 나를 만들어 가는 시작이었던 것이리라.


비밀스러워 보이는 밤이 좋다. 낮시간동안 요란스러워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해지고 평온해지는 밤은 나의 근심과 걱정을 작게 만들어 준다.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이야기하고 안부를 전하면서 주변이야기를 하고 그러다 비밀임을 공유한다. 입이 근질거려도 참고 견디며 숨기고 무엇도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쓴다. 비밀이기에! 어울리며 떠들다가 나만 모르고 있었나 싶은 비밀 아닐 내용들이 “너만 알고 있어. 어디 말하면 다쳐”라고 하면서 중요한 화제가 된다. 그럴 거면 말을 하지 말지, 그러면 듣지도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느덧 남의 이야기들에 관심이 없어진다. 나의 삶이 편안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노후를 준비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일까? 하기야 재미나다고 접하는 영화나 드라마도 알고 보면 남의 이야기이다. 건설적인 대화는 무엇일까?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나 덕담일까? 그냥 모여서 대화한 것에 의미를 두자. 재밌고 즐거웠으면 그걸로 만족하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이유도 없고 기억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대화가 시작되길 또 희망하면서 순간순간을 즐겁게 지내자. 주변 사람들이 아프기 시작하고 푸른 하늘로 떠날 준비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 올 때마다 자꾸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해진다. 지금 서 있으면 땅이지만, 걸으면 길이 된다. 길을 만들어 가라는 글귀가 와닿는 비 오는 오늘이다. 그래 비밀이라고 하자. 그대가 원하니 비밀인 것을 혼자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 우리 사이의 비밀을 오늘도 만들어가면서 재미나게 살아보자. 아무것도 아닌 비밀들로 가득 찬 비밀들을 품에 가득 안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갑자기 옛 영화제목이 생각난다.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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