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로 살아가는 방법에 관하여
안녕하십니까. 김무위입니다.
오늘은 제 소개글을 하나 작성할 겸 저의 인생철학인 '무위(無爲)'에 대해서 설명드리면서,
진짜 나로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를 드려볼까 합니다.
무위(無爲)의 의미에 대하여
'무위(無爲)'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개념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은 상당히 오묘하고 애매한 서술이 많기 때문에 그 진의에 대한 해석론이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해석은 전적으로 최진석 교수님의 해석을 따랐으며, 제 방식으로 이해한 부분들도 섞여있어 다소 주관적인 설명이 될 수 있음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뭐 문제가 될 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설명하는 무위가 노자의 무위가 아니라면, 저 김무위의 무위로 재 탄생 시켰다고 치면 되니까요. 그리고 그게 노자가 원하는 무위적 사고이기도 할 겁니다.
무위는 직역하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인위적인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유발하라리의 명저 '사피엔스'의 가장 처음 나오는 개념은 '인지 혁명'입니다. 제 방식으로 표현해 본다면, 인위적인 것이란 아마 인류의 역사가 인지혁명을 거치면서 생겨난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지혁명이란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합니다. 전에 없던 방식의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인데요.
'언어'는 인위적인 것입니다. '언어'는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실체를 완벽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시작'이란 무엇일까요?
100M 육상선수들이 출발점에 서있습니다. 3 , 2, 1 땅! 총소리가 터짐과 동시에 선수들이 달려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때 정확한 '시작'의 시점은 언제일까요? 화약총이 터질 때입니다. 하지만, 화약이 터지는 그 정확한 찰나의 순간을 명확하게 포착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육상경기가 시작하는 시점은, 화약총소리가 터지기 전과 화약총소리가 터진 후 사이의 어떤 아주 찰나의 시점에 존재합니다.
노자가 보기에는 이 세상의 만물이 존재하는 방식이 이렇다는 것이죠.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반대편을 향해 열려있고 반대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언어는 본질적으로 '구분 짓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인간을 '이성'이라는 본질 안에 가두는 행위인 것이죠.
노자가 보기에 이 세상의 만물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이 세상의 만물은 시작과 끝, 차가움과 따뜻함, 있음과 없음 그 사이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정확한 수단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사물 자체인 것입니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새운 인위적인 가치체계들은 본질적으로 구분 짓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구분 지어있지 않습니다.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정의 내릴 수 없는 것 들입니다. 그냥 그 자체입니다.
이런 인위적인 가치체제를 벗어던진다.라는 행위가 곧 무위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노자의 철학을 23살 무렵, 군에서 처음 접하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6891239
바로 최진석 교수님의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이라는 책을 통해서 접했는데요. 책을 읽고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란 어떤 느낌인지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최재천 교수님은 책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난 뒤의 소감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습니다.
" 새벽 동이 틀 무렵 책을 덮고 바라본 창 밖의 세상은 어제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나무들은 왜 거기 서 있는지, 새들은 왜 이른 새벽부터 지저귀는지, 나는 왜 사는지 가지런히 설명되기 시작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2/02/2016020203870.html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中
저 또 한 이 책을 읽고 나니, 세상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였으며, 제 인생 또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선과 악에 대한 개념, 강함과 약함이란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등등 이 세상의 그 어떤 사상 혹은 생각들도 더 이상 저를 구속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안다'는 것과 직관적으로 '깨닫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단순히 아 이런 거구나. 하고 배우고 넘어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충격적이면서도, 흥분감과 고양감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전과는 완전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감탄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노력하지'않아도, 제 실제의 삶 또한 천천히 변해 갔습니다. 노자의 철학은 제가 하는 말과 표정과 행동 그리고 인생의 기로에서의 선택 등등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무튼, 노자의 사상을 통해 그전까지 경직되어 있던 제 생각의 틀이 자유로워졌지만, 자유는 본질적으로 혼란을 담고 있더군요.
전역 후, 약 1년간의 방탕(?)한 생활을 하는데에 아주 요긴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글이 상당히 길어지는 것 같아 염려스럽습니다.
짧고 읽기 쉬운 간결한 글이 좋은 글인 건 알겠는데 이번 주제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겠습니다.
이번 글만큼은 저 자신에 대해 쓰는 글이니까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좀 끊어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에 대한 소개 글이지만 여러분께도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인사이트가 될 거라고 자부합니다.
노자의 철학이 실제 인간의식의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된 과정에 대해서 설명드리려 합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