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나는 아버지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나무는 먼발치에서만 봐도 속살의 향이 느껴진다거나 수백 년이 넘은 어떤 나무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들은 때문이다. 그때 나는 어렸고 아버지는 진지했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아버지는 망설이며 담배만 피워댈 뿐 정작 비밀은 말해주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발설치 않겠노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그제야 다가와 속삭였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가 날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한없이 진지하고 은밀했으므로 그리고 비밀은 지켜야 했으므로 나는 한동안 그 말을 혼자서만 열렬히 믿고 살았다.
아버지가 나무의 소리를 들은 건 갈왕산과 중봉의 중간쯤에서라고 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주목(朱木)의 음색이 너무도 또랑또랑해 깜짝 놀랐는데 어찌나 맑고 초롱한지 같이 듣지 못해 아쉬웠다며 나무가 했다는 말을 내게 전했다. 산길은 험하고 지금은 너무 어리니까 12살이나 13살쯤. 산앵두가 익어가는 계절이면 좋겠다고 했을 때 나는 “왜요”라고 물었고 아버지는 “내 말이 아니라 나무가”라며 답을 듣게 된다면 꼭 알려 달라 말했다.
비운사 약사전 공사를 마치고 목재를 둘러본다며 아버지가 목수들과 사찰을 나설 때 난 7살이었다. 공사가 끝나면 다음에 쓸 목재를 미리 베어 통풍이 잘되는 곳에 말리는 일은 어느 작업장에서나 하던 일이었다. 매번 그랬듯 따라나서려 하자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무가 어디쯤 있는지 기억할 수 있겠어? 아빠는 술 마시면 까먹을지도 몰라.” 나는 얼른 승방으로 달려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꺼내 일러준 대로 지도를 그렸다. 잊지 말라고 한 것도 빼먹지 않았다. 아침 일찍 누리와 같이, 도시락과 약과 3개, 찐 감자나 고구마. 토끼나 다람쥐를 봤다고 따라가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길이 복잡해지면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없어서라고 적었다. 나는 틀리거나 빠트린 곳은 없는지 묻기 위해 약사전 들마루에 앉아 오후 내내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러나 해가 훌쩍 넘어가고 달이 차오를 때까지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꼼짝 않고 앞산 봉우리만 바라보고 있던 내게 큰스님이 말했다. “네가 보살이 되겠구나.” 모자라는 건 채우고 넘치는 건 버릴 줄 알게 될 거라며 아이의 눈물 없음을 가여움 대신 득도라 표현했던 큰스님. 번뇌의 아픔은 어차피 깨달음으로 극복해야 한다며 무슨 뜻인지 몰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네가 지금 그걸 행하는 중이거든.” 심신이 굳건해야 한다며 먹고 싶은 건 뭐든 말해보라 했을 때 나는 삼겹살과 새콤한 환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사찰 마당으로 가을 햇살이 번지던 8살 어느 아침나절, 나는 공양주님이 보살피던 삽살개 누리와 함께 날 보고 싶어 한다는 주목을 찾아 나섰다. 대책도 없이 발걸음이 거침없었던 건 모험심이 많거나 참을성이 없거나 혹은 호기심이 많거나 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대웅전 뒤뜰에서 어은골로 길을 잡다 개울이 나오면 중봉 쪽으로, 바위채송화와 솔이끼가 깔린 너덜길을 지나 흰 송진이 흘러내리는 분비나무 군락에선 오른쪽 길로, 빨갛게 익은 산앵두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하봉 쪽으로 걷다 손가락에 붉은 물이 들 때쯤. 정말 내 앞에 거대한 주목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었다. 펼쳐진 광경이 모두 사실이었던 탓에 나는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목소리 들려?” 하지만 나무는 말이 없었는데 그게 12살이나 13살이 아니라 8살에 찾아갔기 때문이라 여겼고 그런 이유로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의 그 황당한 얘기를 한 번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버지는 나무를 다루는 도편수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쇳덩이와의 교감으로 징이 되고 범종이 되어 소리에 혼이 실리듯 나무도 그럴 수 있는 법 아닌가. 경지에 오른 장인의 예술혼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바보같이 멍청했으며 아버지는 무심했거나 모질었거나 그도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었거나 사기꾼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