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지식보다 신선한 질문이 필요한 AI 시대

by 이루다니

아내와 아이들이 학교로 떠나고 나면, 집 안에는 비로소 고요한 나만의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가장 먼저 집안의 모든 문을 연다. 밤새 갇혀 있던 눅눅한 공기를 내보내고, 밤새 담장 밖에서 서성이던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인다.


살갗에 닿는 공기가 쌀쌀하지만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상쾌하다. 이 순간만큼은 공기청정기가 따로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청정함은 기계 안이 아니라 바깥세상에 있었다. 낡은 공기를 새 공기로 갈아끼우고 청소 전 유튜브를 검색한다.


그 때 내 시선이 멈춘 곳은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의 강연이었다. 주제는 <AI보다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따로 있다>였다.


강연을 들으며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기술적인 AI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근원적인, 그래서 너무 당연해 잊고 살았던 질문 하나였다.


“우리는 왜 아이를 공부시키는가?”


돌이켜보니 이 질문을 진지하게 대면해 본 적이 없었다. 남들이 다 하니까, 의무교육이니까,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하면 큰일이 날 것 같으니까.


예전에는 학교가 분명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고, 맡은 일을 해내고, 사회에 필요한 태도를 익히는 곳. 산업화 시대에는 그것이 꽤 잘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예전의 질문과 예전의 답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AI가 등장하면서 더 분명해진 것이 있다.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식은 AI가 더 빠르게 찾는다. 계산도, 요약도, 정리도. 앞으로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왜 배우는지 묻고,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생각을 말과 글로 풀어내는 힘.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에 더 중요해지는 것들이다. 그래서 AI의 등장이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다. 인간에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하기 때문이다.

detait-A1_rJmm6hz8-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detait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왜 우리 부모들의 마음은 더 조급해지기만 할까. 변별력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이 틀릴 수밖에 없는 문제를 내고, 점수로 줄을 세운다. 본래 시험은 아이가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해 채워주기 위한 도구였으나, 이제는 아이를 타인과 비교하고 등급 매기는 잣대가 되어버렸다.


변화의 신호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2014년,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직접 '아드 아스트라(Ad Astra, 별을 향하여)'라는 학교를 세웠다. 그곳엔 성적표도, 학년 구분도 없다. 오직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해결하는 능력에만 집중한다. 정답을 맞히는 사람보다 질문을 던지고 직접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세상이 원한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이가 조용히 앉아 있으면 안심하고, 시키는 것을 군말 없이 잘하면 성실하다고 믿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어쩌면 교육의 변화보다 더 어려운 것은 부모 내면에 자리 잡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침 환기를 마치고 깨끗해진 거실을 본다. 맑은 공기가 들어오니 비로소 집 안의 물건들이 제 빛을 낸다. AI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도 이 환기와 닮아 있다. 아이에게 무엇을 더 채워 넣을까 고민하기 전에, 고여 있는 부모의 불안부터 내보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는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가? 아니, 더 솔직해져 보자. 우리는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관리'하고 있는 걸까.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성장을 돕는 것과, 정해진 수치에 맞춰 아이의 인생을 경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AI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평생 꺼내지 않았을 질문이다. 우리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