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MBTI 못지않게 자주 이야기하시는 부분이 바로 ‘애착유형’이에요. 흔히들 불안형이다, 안정형이다, 이야기하는 그것들 말이지요. 하지만 대다수의 사연은 실제로 상대방이 회피형이거나, 불안형인 경우는 잘 없어요. 대부분은 상황이 여러분과 상대방을 그렇게 만든 것일 확률이 높지요.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회피형이라고 단정하게 되는 이유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보다, 상대방을 회피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쉽고 빠르기 때문이에요. 물론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빠르고 쉬운 길이기는 하겠지만, 이러한 태도는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를 유발하고, 멀쩡하던 연애를 아주 빠른 속도로 망치게 된답니다.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애착유형의 실체
사실 애착유형 이론은 부모와 유아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이에요. 유아기 때 형성된 부모와의 관계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영향을 끼친다는 뭐 그런 이야기지요. 그러던 중 한 심리학자가 ‘애착유형이 연애에도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1980년대, ‘낭만적 애착유형’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애착유형’의 실체랍니다. 생각보다는 역사가 길죠?
문제는 ‘낭만적 애착유형’이 대중화되면서 시작되었어요. 나름대로 과학적인 근거도 있겠다, 상대방의 의도를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니까 MBTI와 함께 연애이론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인데, 이것이 점점 남용되고 있는 것이지요. 상대방이 조금만 감정표현이 서툴고 대화를 피한다면 ‘회피형’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고, 상대방이 조금만 불안해하거나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불안형’이라는 낙인을 찍지요. 심지어는 스스로에게도 ‘나는 회피형이야.’, ‘나는 불안형이야.’ 해버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갈등관리유형’을 ‘애착유형’이라고 착각한 것이에요. 갈등관리유형은 어떠한 다툼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을 하려 하는지를 ‘주장성’과 ‘협동성’의 2가지 축을 이용해서 유형화한 것이랍니다. 갈등관리 유형은 크게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어요.
경쟁 (높은 주장성, 낮은 협동성)
내가 맞고 네가 틀린 거야.
수용 (낮은 주장성, 높은 협동성)
네 말이 옳아. 네가 이긴 거로 하자.
타협 (중간 주장성, 중간 협동성)
내가 한 발짝 물러날 테니, 너도 이 부분은 양보해 줘.
협력 (높은 주장성, 높은 협동성)
양쪽 다 일리가 있는 말이야.
회피 (낮은 주장성, 낮은 협동성)
이따가 이야기해.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이렇게 됩니다.
감이 오시나요? ‘상대방이 회피형이에요.’라고 말하는 분 중 대다수는 상대방의 ‘갈등관리유형’이 회피형인 것을 보고, 상대방을 오해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이 회피 행동을 보일 때, 상대방이 회피형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상대방이 왜 회피를 하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상대방과 건설적인 대화가 되고 다툼을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하게 되며, 안정적인 장기 연애로 관계를 이끌어갈 수 있게 됩니다.
진짜 회피형을 구분하는 방법
좋아요. 이제 ‘갈등관리유형’에 대해 알았으니, 애착유형과 갈등관리유형을 구분하는 방법이 궁금하실 테지요. 소수 기는 하지만, 진짜 회피형인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상대방이 평소의 대인관계도 회피하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특별한 다툼이나 갈등이 없는 일반적인 관계도 유난히 생각을 많이 하며 불안해하거나, 회피하려 든다면, 상대방이 진정한 의미의 ‘회피형’ 일 가능성이 높아요. 상대방의 인간관계가 유난히 좁고 깊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회피형일 확률이 높은 것이지요. 또한, 어떤 이유로 대인 관계를 회피하느냐에 따라서 ‘거부-회피’와 ‘공포-회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만일 상대방이 유난히 모임과 같은 활동을 귀찮아하고, 어떠한 사건이나 대상에 대해 감정이 없는 듯 보인다면 그것은 ‘거부-회피’ 일 가능성이 높아요. 또 그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다면 ‘우울증’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어요.
만일 상대방이 대인관계에 있어서 생각이 많은 타입이고 ‘걔가 날 싫어하면 어쩌지?’, ‘내가 혹시나 실수한 건 아닐까?’와 같은 고민을 많이 한다면 그것은 ‘공포-회피’ 일 가능성이 높아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고(이걸 ‘예기불안’이라고 해요.) 선제적으로 관계를 끊어내거나 피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두 가지 경우 모두 해당하지 않거나 조금 애매하다 싶다면, 그것은 ‘갈등관리유형’이 회피형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성향이 원래 회피를 하는 것이 아니고, 갈등을 대하는 나의 태도나 갈등이 발생한 상황 자체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회피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지요.
이렇듯 우리는 상대방의 특정한 말과 행동만을 보고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고, 상대방과 상대방의 주변 상황까지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반대로, 상대방이 여러분의 특정한 말과 행동만을 가지고 ‘너 회피형이야’라고 판단한다면 그것도 상당히 불쾌한 일이겠지요.
거부-회피와 공포-회피를 간단하게 표현해 보았어요.
회피형과 연애하는 방법
그렇다면, 회피 행동을 보이는 상대방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앞서 설명했듯 ‘갈등관리유형이 회피형인 경우’, 와 ‘진짜 회피형인 경우’로 나눠서 설명할 수 있어요.
갈등관리유형이 회피형인 경우
상대방의 갈등관리유형이 회피형이 되는 데에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내 생각의 템포가 빠르다.
생각의 템포라고 하는 것은 감정이 나타나고 표현되기까지의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당장 갈등 상황을 즉시 해결하지 못하면 입에 가시가 돋는 분들이 있지요? 그런 분들은 상대방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지금 당장 대화할 것을 요구하지만, 상대방은 아직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았으므로 ‘아직은 이야기할 것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하게도 ‘시간을 달라’라는 요구를 하게 되지요.
나의 주장이 지나치게 강하다.
어떤 분들은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갈등을 해결하는데 설득은 중요한 일이긴 합니다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부족한 경우가 많지요. 상대방의 말을 끊거나,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데 심취해서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많은 말을 한다면 상대방은 대화의 의지가 꺾이게 됩니다. 결국, 동굴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지요.
혹은, 상대방에게는 예민한 문제일 수 있다.
어떤 경우라면, 상대방이 다양한 이유로 특별히 언급하기 어렵거나,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결론을 내기까지 생각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거나, 상대방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거나(혹은 지나치게 중요한 결정이라 판단하기 어렵거나), 상대방이 가진 상처나 트라우마를 건드는 일일 수 있지요. 이럴 때는 조급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상대방의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를 존중해 주는 한편으로 ‘왜 이 일이 나에게는 중요한지’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만약 그 문제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중요하거나 긴급하지 않은 문제라면 과감하게 문제를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답니다.
실제로 ‘애착유형’이 회피형인 경우
만약, 상대방의 애착유형이 실제로 회피형이라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거부-회피’와 ‘공포-회피’의 두 가지 경우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상대방이 거부-회피형인 경우
만약 상대방이 갈등 상황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을 귀찮아하고, 의지가 없는 ‘거부-회피형’인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사실 간단하게도 상대방의 ‘귀찮음’을 존중해 주고 특별한 일이 있지 않다면 상대방이 마음껏 게으름 피우게 두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만큼 연애는 재미없어지겠지만, 상대방이 좋아서 연애하지 재미있으려고 연애하나요? 만약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겠다면 상대방과 여러분은 맞지 않는 것이므로 이별을 고려해봐야 합니다. 아 참, 매사에 에너지가 없고 귀찮다며 일을 미루는 것은 우울증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공포-회피형인 경우
일단 상대방과 어떻게 친해지고 어떻게 연애하게 되었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일단 ‘공포-회피형’과 충분한 유대감을 쌓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충분한 유대감’이 독이 됩니다. ‘공포-회피형’은 상대방과 가까워질수록 더 불안해하거든요. 이런 상대방을 어떻게 해서 보통의 행복한 연애를 하는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공포-회피형’은 대인관계에서 커다란 상처가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전문적인 심리상담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과 같이 절대적인 사랑으로 상대방을 보듬어주고, 상대방이 상처를 주더라도 밀려나지 않고 상대방을 안아줄 수 있는, 대단히 피곤한 희생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겐 안된 일이지만, 저는 이 연애를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결론
흔히 ‘회피형’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이 사실은 다른 종류의 ‘회피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이 글을 잘 이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께 이런 이야기도 드리고 싶어요. ‘함부로 상대방을 단정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것을 싫어합니다.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있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색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설명하려 합니다. 마치 실제 무지개의 색은 다양하고 연속적인 색이지만, 무지개의 색을 단순히 7개의 색으로 결정지어놓은 것처럼요.
우리는 직관적으로 상대방을 속단하면 안 되겠습니다.
MBTI도 그렇고 애착유형도 그렇지요. 하지만 단순히 대화를 거부하는 상대방의 일부분을 보고 상대방을 ‘회피형’이라고 단정 지어버린다면, 관계 개선을 위한 중요한 열쇠를 놓치게 되고, 또 놓쳐서 이별을 겪고 절 찾아오지요. 부디 그런 실수는 범하지 마시고, 빨간색과 주황색 사이의 애매한 붉은색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