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배우다 보니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내 눈에 내가 만든 꽃 작품은 언제나 예뻤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내 작품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려 보았지만, 화면 너머의 반응은 늘 추상적이었다. 나는 더 직접적인 피드백이 필요했다.
마침 2월, 졸업 시즌이 다가왔다.
‘그래, 졸업식 꽃다발을 직접 만들어 팔아보자.’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줄 기회이기도 했고, 잘되면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타깃은 명확했다. 서울의 대학교. 졸업 일정이 몰려 있는 대학교들을 하루 한 곳씩, 5일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꽃시장에 가서 처음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꽃’을 마음껏 골랐다. 수량 계산도, 원가 계산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꽃을 가득 담아 나오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한 학교당 욕심내지 말고 스무 개씩만 팔자. 우리 집 거실은 순식간에 꽃 천지가 되었고, 혼자서 수십 개의 꽃다발을 만드는 건 처음이라 설렘은 더 컸다. 만들고 또 만들고, 포장까지 마치니 새벽 다섯 시. 밤을 꼬박 새웠다. 잠들기 전 마지막 생각은 하나였다. 이 꽃다발들이 과연 팔릴까?
졸업식이 오전 10시 시작이라 한 시간 전에 미리 도착했다. 그러나 학교 근처는 이미 교통체증과 주차대란이었다. 자차 없이 매일 대중교통만 타고 다녔던 나는 교통 체증을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졸업식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도착했고, 나의 첫 졸업식 꽃 판매는 시작도 못 한 채 끝이 났다.
그 다음 날은 더 일찍 갔다. 이번엔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대학교 정문 앞은 이미 꽃을 파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나는 정문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손님이 내가 있는 곳까지 올 리가 없었다. 너무 속상했다. 정문 가까이에서 장사하던 사장님께 다가가 물었다.
“사장님은 언제 나오신 거예요?”
“나 여기서 잤어.”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이해됐다.
이틀 연속 실패.
꽃냉장고도 없는 상황이라 당일에 판매하지 못한 꽃들은 빼놓고 새 꽃을 다시 구매했다. 꽃 장사를 경험해 본다는 처음의 설렘은 사라지고 현실이 밀려왔다. 장사는, 생각보다 훨씬 치열했다.
셋째 날, 나는 결심했다.
이왕 하는 거 나도 전날 밤에 가서 정문 앞에 자리를 잡자. 고객들이 가장 많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내 꽃이 어떤 반응을 얻는지 꼭 보고 싶었다. 밤 12시에 출발해 학교 앞에 도착해서 나도 드디어 정문 앞에 돗자리를 깔았다. 자리를 잘 맡은 것만으로도 예감이 좋았다. 차에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새벽 공기는 차가웠고 밤은 너무 길었다. 몸은 얼어붙었지만, 해가 뜨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환해졌다. 아침이 되자 수십 팀의 꽃 장사들이 매대를 펼쳤고, 학생들과 가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만든 꽃다발을 테이블 위에 세팅했다. 비싼 꽃을 아끼지 않았기에 가격도 낮추지 않았다. 정가에 팔렸을 때의 반응이 궁금했다. 첫 손님이 왔다.
“너무 예쁘다!”
말과 동시에 결제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 세 번째 손님도 이어졌다. 불과 15분 만에 꽃다발 30개가 모두 팔렸다. 차에서 떨며 보냈던 밤, 며칠간의 실패와 좌절이 그 순간 한 번에 녹아내렸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가장 먼저 완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변 사장님들은 내게 부러움을 건넸고, 나는 처음으로 ‘판매의 감각’을 몸으로 배웠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꽃 단가 계산법, 고객이 선호하는 디자인, 고객 응대 기술 등을 터득하게 되었다. 실력은 작업실에서 완성되고, 현장에서 빛난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때의 졸업식 꽃다발 판매 경험은 지금까지도 내가 꽃 일을 하는데 흔들림 없는 단단함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