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네 시간의 거리

by 그레이스

일주일에 한 번, 서울 송파구에서 경기도 고양시까지 꽃을 배우러 다녔다. 자가용은 없었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왕복 네 시간. 지금 생각하면 결코 짧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때의 나는 그 시간을 ‘이동’이 아니라 ‘설렘’으로 기억한다.


꽃 수업이 있는 날이면 발걸음은 늘 가벼웠다. 아직 피어보지 않은 꽃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그냥 돌아오지 않았다. 학원생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남아서 연습을 했다. 막차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손에 꽃이 익을 때까지.

핸드타이드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면 꽃다발을 풀었다가 다시 묶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연습을 멈추지 못했다. 꽃이 없으면 나무젓가락을 손에 쥐고 그것을 꽃줄기라 상상하며 손의 각도와 힘을 익혔다. 누군가 보면 우스웠을지 모르지만, 그 시간만큼은 내가 가장 진지해지는 순간이었다.

꽃 수업이 없는 날에도 학원 원장님께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하시면 주저하지 않고 찾아갔다. 행사 준비, 공간 장식, 강의 보조까지. 어느 순간부터 원장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먼저 떠올려 주셨다.


“지은아, 내일 강의가 있는데 같이 갈 수 있니?”

“지은아, 백화점 디스플레이가 있는데 도와줄 수 있니?”


대답은 늘 같았다.

“네, 선생님. 내일 갈게요.”


아르바이트비를 받지 않았지만, 그 호출 자체가 나에게는 보상이었다. 누군가에게 ‘함께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 지역이 어디든, 시간이 몇 시든 연락이 오면 달려갔다. 점점 나는 평일 수업 외에도 주 2~3회는 원장님 곁에서 현장을 경험했다.


그 시간들은 교과서에 없는 수업이었다. 꽃이 공간을 바꾸는 순간, 손의 속도가 현장의 리듬을 맞추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태도가 실력을 만든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평일에는 학원에서, 주말에는 웨딩 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은 늘 가득 찼고, 하루는 언제나 부족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기가 또 있었을까 싶다.


20대의 나는 이론과 실기를 오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과정을 듣고 싶었고, 수강료가 부족하면 오직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원과 알바, 웨딩 일, 자격증 취득 및 대회 준비까지.... 이때 나는 잠을 자는 것보다 꽃으로 나를 채워가는 게 더 좋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하나의 욕심이 생겼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라면, 더 깊이 알고 싶다.’ 현장을 경험할수록 원예학 이론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어졌다. 감각으로만 알던 것을 언어와 학문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원예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꽃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안다. 네 시간을 오가던 그 길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열정은 재능을 증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삶을 한 단계 확장시키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는 것을.










20161202_105213.jpg





"꽃은 서두르지 않아도 제때 피어난다는걸

그때의 나는 몸으로 배웠다.

집요한 손 끝에 꽃이 머물고

태도가 결국 인생의 컬러가 되었다."

이전 05화#5. 전쟁터에서 나를 피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