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쟁터에서 나를 피우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가장 선명해 졌던 시간

by 그레이스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플라워샵 단기 알바에 망설일 틈도 없이 바로 지원했다. 그렇게 내 생에 처음 발을 들인 플라워샵은, 하필이면 '어버이날'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간 꽃집은 카네이션 바구니 주문으로 숨 돌릴 틈 없는 전쟁터였고, 나는 하루 종일 쏟아지는 주문 속에서 화장실 한번 갈 시간도 없이 정신을 놓을 지경이 되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들떠 있었다. 너무 힘들었는데, 분명히 재미있었다.

그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나는 주말마다 꽃집으로 향했다. 평일에는 학교에 다니고, 주말에는 플라워샵에서 일하며 꽃을 만졌다. 상품 제작은 물론이고, 백화점 공간 디스플레이 작업도 함께했다. 디스플레이가 있는 날이면 백화점 폐점 이후부터 다음 날 오픈 전까지 밤을 새웠고, 그대로 학교에 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피곤함이 쌓여도 꽃을 만지는 순간만큼은 정신이 또렷해졌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점점 단단해졌다. ‘내가 정말 플로리스트가 되어 가고 있구나.’

특히 내가 만든 플라워 상품을 꼭 사고 싶다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고객들이 늘어나자, 플라워샵 대표님조차 놀라워하셨다. 그때 느꼈다. 꽃은 손재주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는 감각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그렇게 한 플라워샵에서 두 번의 사계절을 보내며 약 2년을 일했을 즈음, 대표님은 새로운 제안을 해주셨다.


“이제 플라워스쿨에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웨딩도 해보는 게 어때?”


사실 나는 플라워샵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플라워디자인스쿨’이라는 세계가 존재하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당시에는 ‘플로리스트’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개념은 있었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교육 기관이 있다는 발상은 내게 너무 낯설었다.

플라워스쿨은 원예학과와는 전혀 다른 결이라 느껴졌다. 원예가 식물을 생리적으로 이해하는 학문이라면, 플라워디자인은 꽃을 통해 감정과 메시지를 표현하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마치 같은 꽃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는 세계 같았다. 그 순간,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울 수 있겠다!’

플라워샵에서 꽃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기술, 금액대별 상품 제작법, 고객을 대하는 법 등을 배웠다면 플라워스쿨에서는 어떤 꽃이 잘 어우러지는지, 왜 이 컬러를 배색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곳일 것 같았다. 또한 꽃을 만들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꽃으로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혼자서 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시간들, 현장에서 몸으로만 익혀온 감각들이 비로소 체계가 잡히고 정돈이 되어 갈 것 같았다. 배움이란 부족함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이미 가진 가능성을 알아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꽃을 좋아했지만 아직 ‘나만의 꽃’을 정의하지는 못했다. 플라워스쿨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순간은, 내가 꽃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진 순간이었다. 기술에서 감각으로, 노동에서 표현으로, 일이 아닌 ‘삶의 언어’로 꽃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작은 인식의 전환이 이후의 모든 선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처음으로 마음이 반응한 그 한 단어, 한 장면이라는 것을. 나에게 그 단어는 ‘플라워스쿨’이었다. 그 말은 내 안에 오래 품고 있던 꿈을 정확히 건드렸다.


당장이라도 플라워디자인 학원에 등록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그 당시 대학교 등록금도 내가 벌어서 다니고 있던 터라 학교, 학원, 웨딩, 수업까지 병행하기에는 비용과 시간이 벅찼다.

고민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이론과 현장 중 하나를 고르라면, 지금은 현장에 올인하겠다고.

대학교 4학년, 나는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플라워디자인 학원에 등록했고, 웨딩 전문 플로리스트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주말에는 본격적으로 웨딩 플라워를 배우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학원과 현장을 오가며 배우고, 학원비를 벌기 위한 또 다른 알바와 자격증 공부를 병행했다. 주말에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웨딩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1년 동안, 나는 오로지 꽃만을 위해 살았다. 그 시간은 고단했지만, 내 삶의 컬러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시기였다. 꽃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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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같은 꽃집에서 나는 나를 피워냈다.

몸은 지쳤지만 내 인생의 컬러는 선명해졌고,

꽃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꽃으로 삶을 디자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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