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꽃을 만진 날, 내 삶의 컬러가 바뀌었다

손끝에서 시작된 재능은 결국 인생의 언어가 되었다

by 그레이스

꽃과 식물을 좋아했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원예는 대부분 이론이었다. 교재 속 사진과 칠판 위 공식만으로는 식물이 살아 숨 쉬는 감각을 채울 수 없었다.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형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갈증이 커질 즈음, 학과에 '플라워디자인'이라는 과목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너네가 원예학과인데 사회 나가서 꽃꽂이 한 번은 배웠다고 해야 하지 않겠니?”


교수님의 이 한마디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말 끝에는 배움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교수님은 유명한 플라워디자이너 분을 초빙해 한 학기짜리 ‘플라워디자인’ 수업을 만들어 주셨다. 그 수업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처음으로 생화를 손으로 만져 보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꽃은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동시에 단단했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컬러는 감탄을 자아냈고, 한 송이 한송이 향기를 맡으며 생명력을 느꼈다. 줄기를 자르고, 각도를 맞추고, 컬러의 균형을 고민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휩싸였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공부가 있다니.’


교수님의 시범을 따라 꽃을 꽂는 동안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행복이 밀려왔다. 그건 단순한 성취감이 아니라, 마치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정확한 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꽃 자체도 예쁘지만 각각의 서로 다른 꽃들이 모여 전혀 다른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충격에 가까운 기쁜 깨달음 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셨던 엄마를 닮아 손재주가 있다는 말을 종종 들었지만, 그 재능이 어디에 쓰일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꽃을 만나는 순간, 손끝의 감각이 살아 움직였다. 작품 검사를 받기 위해 교수님께 보여드렸을 때, 교수님은 내 작품을 보자마자 이렇게 물으셨다.


“너, 꽃 배웠니?”
“아니요. 오늘이 처음이에요.”


교수님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내게 앞으로 나와 만드는 과정을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라고 하셨다. 태어나 처음 꽃을 꽂은 날, 사람들 앞에서 설명까지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얼떨떨했지만, 꽃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설명하며 다시 꽃을 만지는 동안, 나는 내가 왜 이토록 즐거운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어려워하는 친구들 곁에 다가가 함께 꽃을 만지며 도와주었고, 그 시간은 내게 또 다른 기쁨을 안겨주었다.


플라워디자인 과목은 단숨에 내 ‘최애 수업’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나를 부르시더니 말씀하셨다. 백화점 플라워샵에서 어버이날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는데, 나를 추천했다는 이야기였다.

“현장 한 번 나가보면 많이 배울 거야.” 교수님의 그 한마디는, 교실에서 시작된 나의 꽃 인생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 문장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번역하는 언어라는 것을. 그리고 컬러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심리라는 것을. 내 삶의 컬러는, 바로 그날 꽃을 처음 만진 순간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꽃을 만진 날,
내 손끝의 재능은 마음의 언어가 되었다.
컬러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꽃은 말없이 위로한다.
나는 오늘도 사람의 마음을 꽃으로 번역한다.



이전 03화#3. 흙을 만지며 배운 생명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