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흙을 만지며 배운 생명의 언어

흙빛에서 시작된 나의 컬러

by 그레이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아파트 앞에는 오랫동안 아무 역할도 맡지 않은 공터가 있었다. 잡초와 자갈이 뒤섞인 그곳은 늘 회색빛으로 계절만 바뀌는 장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작은 광고 한 장이 내 눈에 띄었다.

‘주말농장 사용 허가’.

그 종이 광고를 본 순간, 공터는 더 이상 빈 공간이 아니었다. 가능성이 되었고, 나는 이유 없는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누구보다 먼저 그곳으로 향했다. 먼저 온 사람이 땅을 쓸 수 있다는 말이 마음을 재촉했다. 작은 발로 조심스레 선을 긋고, 작은 손으로 자갈을 주워 경계를 만들었다. 그 선을 따라 자갈을 놓으며 속으로 말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이곳은 내가 돌볼 자리.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참 대담했고, 동시에 어린아이답게 순수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내가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라고는 방학 과제로 유리컵에 키워 본 고구마가 전부였다. 원예에 대한 지식도, 농사에 대한 감각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삽질은 서툴렀고 돌은 무거웠지만, 흙의 컬러는 따뜻했다. 회색 자갈 사이에서 드러난 갈색의 흙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컬러를 믿고, 하루 종일 땅을 일구었다.


무엇을 심어야 할지 몰라 결국 교과서에서 본 고구마와 감자를 선택했다. 익숙한 이름의 작물들이었지만, 그날 이후 나의 일상은 달라졌다. 방과 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텃밭으로 달려가 어제보다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는 일이 하루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도, 초록을 향한 기대는 매일 새로웠다.


식물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나에게 메시지를 건네고 있었다. 기다림의 의미, 꾸준함의 힘, 그리고 보이지 않는 변화의 색깔을. 어느 날 흙을 헤치고 고구마와 감자를 캐내던 순간, 나는 생명의 무게를 손끝으로 느꼈다. 그 작고 단단한 열매들은 나에게 뿌듯함을 넘어, 나 자신이 단단해졌다는 감각을 남겼다.


그때 처음 알았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은 생명을 돌보는 일이자, 내 마음의 컬러를 가꾸는 일이라는 것을. 회색이던 공터는 초록으로 바뀌었고, 그 초록은 내 안의 불안을 잠재우는 치유의 색이 되었다. 훗날 내가 꽃과 컬러로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게 된 시작은, 바로 그 흙빛 텃밭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흙과 컬러 앞에서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된다.









회색의 공터에 흙빛 설레임을 심었다.

초록은 기다림을 가르쳤고,

뿌리는 내 마음까지 자라

나는 오늘도 컬러로 사랑을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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