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장식이 아닌 마음의 언어
담임 선생님 책상 위에 놓인 투명한 유리 화병에 꽤 오랜 시간 동안 꽃이 채워지지 않았다.
보통은 출근길에 꽃을 구입하신 후 교실로 가지고 들어 오시는데 한동안 바쁘셨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 책상은 작은 1인용 철체 책상이었다. 책상이 작아서 교과서 한 권, 문제집 한 권 펼쳐 놓은 후 소지품과 문구류 몇 가지를 올려놓으면 꽉 차는 사이즈의 책상이었다. 이 작은 책상 구석에 선생님의 화병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 책상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도 있었겠지만 그 빈 화병이 내 눈에는 정말 크게 보였다.
화병이 비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꽃이 있으면 선생님께서 더 많이 웃으실 텐데...'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선생님 꽃병에 꽃을 꽂아 드리고 싶어 부모님께 받은 용돈 만원을 꺼내 들었다.
동네 꽃집으로 갔다.
꽃집 사장님께서 몇 가지 꽃 종류를 보여주셨다.
선생님은 그 당시 40대 초반이셨다. 피부색은 하얗고 메이크업은 살짝 화려한 편이셨다. 헤어스타일은 세련되고 깔끔한 단발 스타일이셨고, 헤어 컬러는 오렌지 컬러로 기억한다. 의상은 장식적 요소가 많은 트위드 재킷의 상의를 선호하셨고, 하의는 미니스커트를 자주 입으셨는데 가끔 가죽 미니스커트도 입으셨다. 신발은 여름엔 하이힐, 겨울엔 롱부츠를 신으셨다.
요즘이야 개성이 다양한 선생님들이 많지만 1990년대 후반 그 당시 담임선생님은 조금 튀는 스타일이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내 눈에는 학교 전체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예쁘셨다. 선생님의 모습이 나에겐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도 커서 담임선생님처럼 멋쟁이 커리어 우먼이 돼야지 라는 생각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고 존경했다.
이런 선생님께 이왕이면 선생님 닮을 꽃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 꽃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백합이라는 꽃이 화려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 향기도 진한 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담임선생님 이미지와 딱 맞다고 느꼈다.
"백합 만 원어치 주세요"
나는 꽃 한 송이가 얼마인지 몰라 내가 가진 돈 전부를 이야기하며 백합을 달라고 했다.
꽃집 사장님께서는 나를 귀엽게 보시고 꽃을 추가로 더 주셨다. 꽃을 사서 집에 들고 오는데 이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나는 구입한 백합을 들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갔다. 선생님이 도착하시기 전에 꽃병에 꽂아 놓고 싶었다. 담임선생님께서 교실로 들어오셨고, 들어 오시자 마자 꽃을 보셨다.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선생님은 누가 사다 놓았는지 물으셨다. 내가 수줍게 손을 들자 선생님께서는 나를 앞으로 불러 내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은아 선생님이 백합을 제일 좋아하는 것 어떻게 알았니? 꽃 정말 예쁘다! 지금 너무 행복하네! 정말 고마워~"
선생님은 그날 하루 종일 꽃 근처에 가까이 계시며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 달에 한 번, 같은 일을 반복했다. 꽃을 고르고, 물을 갈고, 컬러를 선택하는 일이 어느새 나만의 의식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의식의 끝에는 늘 같은 장면이 있었다. 꽃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행복한 표정, 그리고 그 얼굴을 바라보며 더 크게 웃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꽃의 컬러와 향기는 사람의 마음에 닿는 언어라는 것을. 특히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다는 사실을. 나는 꽃을 꽂았을 뿐인데, 마음은 위로받고 하루는 밝아졌다. 컬러를 고른 것은 내 손이었지만, 따뜻해진 것은 우리 모두의 감정이었다.
그 경험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다. 꽃을 볼 때마다, 컬러를 볼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꽃이 용기를 주고, 어떤 컬러가 위로가 되는지 꽃과 컬러는 서서히 나의 삶의 언어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믿는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조직의 분위기를 바꾸고, 한 가지 컬러의 선택이 사람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빈 화병 앞에서 시작된 나의 선택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일을 향해 나를 이끌었다.
꽃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내 삶의 방향을 밝혀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