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자 대신 꽃을 사던 아이

만원의 용돈으로 알게 된 행복

by 그레이스

초등학교 때 나는 부모님께 한 달에 한 번씩 만 원의 용돈을 받았다.


그 당시 나에게 만 원은 꽤 큰돈이었다. 이상하게도 과자나 장난감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이 돈을 어디에 사용할까 고민도 하지 않았다. 내가 용돈을 받자마자 발걸음을 향했던 곳은 언제나 꽃집이었다.


그 꽃집은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옆, 건물 틈새에 위치해 있었다. 요즘처럼 모던한 스타일의 깔끔하고 세련된 꽃집이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부스 형태의 가건물이었고, 철판으로 덮인 지붕과 철판으로 둘러싸인 벽체가 전부였다. 간판도 '꽃'이라는 한 글자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작아서 눈에 띄지도 않았다. 한 사람 겨우 서 있을 정도의 공간에서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운영하시던 그야말로 허름한 꽃집이었다.


상가를 지나다닐 때마다 나는 꽃집 앞에 멈춰 섰다. 이번 주에 새로 나온 꽃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게 앞에 서서 꽃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근처까지만 가도 꽃향기가 가득해 그때부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꽃집에 출입문이 없고, 셔터를 올려놓은 채 운영하던 곳이어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꽃을 구경할 수 있는 부담스러운 구조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 나는 워낙 내성적이어서 뻔뻔함이라고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꽃집 앞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척하며 구경하기도 했고, 꽃집 근처에 서성이는 척하며 구경하기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 꽃, 저 꽃들을 구경했다. 이름은 하나도 몰랐지만 모양도 다르고 컬러도 다른 다양한 꽃들을 바라보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양한 꽃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사장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 있었다.

꽃을 사러 온 손님과 몇 마디 나누시더니 고객이 원하는 몇 송이의 꽃을 골라 포장해 드리는 모습,

완성된 꽃다발을 받은 고객이 환하게 웃는 모습은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시각으로는 정말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으로 비쳤다.


그러나 꽃을 구경하려면 계속 가게 앞에서 누굴 기다리는 척 연기를 해야 했던 게 힘들어 결국 나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꽃집 사장님과 친해져야겠어!'


드디어 꽃을 구매하면서 사장님과 첫 대화를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꽃 사러 왔어요!"

사장님께서는 나를 보더니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 당시에는 꽃집에 꽃 사러 왔다는데 왜 놀라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25년 동안 나도 꽃 일을 해 보니 수많은 고객 중에 초등학생이 직접 와서 꽃을 구매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당시 사장님도 아마 생각지도 못한 고객이 왔을 때의 놀란 느낌이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사장님의 놀란 표정은 바로 나를 귀엽게 바라보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사장님께서는 내게 물으셨다.

"누구 주려고?"

이 질문에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요!"


나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40대 여자분이셨다. 평소에 꽃을 좋아하셔서 교실 책상에 항상 꽃병이 놓여 있었다. 시간이 되실 때마다 학교 출근길에 꽃을 한 단씩 사 오셨고, 사 오신 꽃을 교실 앞 책상에서 살짝 다듬어 꽃병에 꽂으셨다. 완성된 화병꽂이를 우리 반 학생들에게 보여 주시면서 너무 예쁘지 않냐며 행복해하셨다. 그 모습이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어 언젠가는 담임 선생님께 내가 직접 꽃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꽃집 사장님께서는 내게 또 물으셨다.

"무슨 꽃으로 얼마나 줄까?"

나는 대답했다.

"백합 만 원어치 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난 스스로 이상함을 느꼈다. 만원은 나의 한 달 용돈 전부였고, 용돈을 받은 지 하루도 안 된 시간이었다. 아직 과자 하나 사 먹은 적이 없고, 꽃집에서 용돈 전부를 소비하면 또 한 달을 기다려야 부모님께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도 돈이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만원 더 있었으면 2만 원어치 구매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꽃을 받고 행복해하실 담임 선생님 표정만 떠 다니고 있었다.







만원을 쥐면

나는 과자가 아닌 꽃을 떠올리던 아이였다.

허름한 꽃집 앞에서

행복해질 누군가의 얼굴을 먼저 상상했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주는 마음이 가진 무게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