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엄마의 살림
하룻밤을 자면서 엄마를 관찰했다. 낮과 밤이 구별이 안 되는 듯 계속 가사상태에 있는 엄마는 잠깐씩 의식이 돌아오면 이런저런 과거이야기를 뜬금없이 하다가 다시 램수면에 빠진다.
가지와 연어를 사 와 저녁장을 차리고 엄마를 깨운다. 그래도 영양식은 먹어야지 싶다. 기운을 차려야 하는데. 뚱뚱한 몸과 달리 몇 년 전부터 소량의 식사만을 겨우 하는 엄마.
알고 보면 혼자 있을 때 라면에 국수에, 탄수화물 덩어리만 먹고 산다. 당뇨약을 먹으면서 말이다.
식사를 차리면서 꼼꼼하게 뒤져본 엄마의 부엌살림은 남루하고 빈한했다. 뭔가 새로 사려하면 극구 사양하고 이미 들인 상품들은 기어이 반납하고야 마는 오래된 습성에 지친 딸들은 이제 뭔가 필요한 것을 사드리는 것도 멈춘 상태이다. 그 결과 코팅이 전부 벗겨진 범랑에 얼마나 사용했는지 알 수도 없는 냄비와 프라이팬, 그리고 너절한 반찬용기들이 다이다.
소변을 지린 빨래를 돌리고 마른 후 개어 놓는 과정에서 엄마의 남루한 속옷들을 본다. 몇 년, 아니 몇십 년을 입었을 것 같은 이런저런 초라한 속옷들.
얼마나 쓰겠냐며 무언가를 사는 것에 극히 거부감을 보이는 태도의 산물이다. 충분히 연금을 받고 있고 자식들도 여유 있는데 엄마는 도대체 왜 이럴까? 매일 껌딱지처럼 앉아 있는 나무체어도 몇 년 전 분리수거장에서 주워온 것이다. 등받이의 쿠션도 사라져 수건과 천을 대어 옷핀으로 꽂아 놓은 이케아 체어는 허리에도 좋지 않아 새로 사려할 때마다 극구 반대한다.
그럼에도 억지로 사다 놓으면 다시 반납을 하고야 마는 엄마. 뭐 하나 사려하면 전쟁을 치르듯 피곤해서 포기한 상태이다.
80이 넘어서부터는 죽음에 다가가는 것을 미리 준비라도 하는 것 같다.
연신, 살면 얼마나 더 살기에 집안에 새 물건을 들이겠냐고 반문하는 엄마.
그러고도 7년을 더 살고 있고 90을 넘길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번일을 계기로 억지로 편안하고 질 좋은 암체어를 강제로 살까 고민이다.
분기마다 가는 병원은 집에서 시간반이 걸리는 서울의 끝과 끝에 위치해 있다.
보행기를 밀고 지하철을 타고 혼자서 끙끙거리는 엄마에게 수차례 같이 가려고 시도했으나 엄마의 거짓말로
번번이 실패이다. 병원행 날짜를 물어보면 흔쾌히 대답했다가 전날 전화를 하면 이미 다녀온 상황이다.
이렇게 계속 따돌리는 게 일상이다.
복잡한 병원에서 내과, 신경외과, 정기검사를 순회하며 보행기를 끌고 구부정하게 다리를 질질 끌는 엄마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모시고 가겠다는 나를 번번이 따돌리는 엄마.
작년인가 엄마는 스스로 119를 3번 불렀단다.
한 번은 보행기 끌고 마켓을 가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주저앉아 꼼짝을 못하여 119를 불렀단다.
이후 집안에서 위급상황이 발생하여 119를 불렀다한다.
이 이야기를 몇달, 아니 몇년후에 자식들에게 이야기한다.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엄마는 말한다.
내가 왜 너희들에게 연락하니?
연락받고 오려면 시간걸리고 마음이 불안한 상황에서 운전을 하면 사고날수도 있는데.
그럴 정신이 있으면 10분안에 출동하는 119에 연락하는게 훨씬 현명한 일이지.
혹시 그러다 갑자기 사망하면 그 또한 내가 바라는 바이지.
내 주변에 시간이 갈수록 어린아이와 같아지는 엄마를 돌보는 친구가 있다.
걸핏하면 불편함을 호소하고 이런 저런 요구를 한다.
떼를 쓰는 아이처럼 수시로 전화를 하고 사소한 것을 요구하는 엄마의 수발을
드느라 친구는 지쳐가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 나의 엄마는 왜 이럴까?
왜 자식들의 돌봄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일까?
엄마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언니와 번갈아가며 엄마의 집을 드나드는 지금
엄마에 대해 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러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