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물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고”
“무슨 일 하세요?”
가장 흔하고도 단순한 질문.
하지만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늘 멈칫했다.
어떤 날은 “영어 가르쳐요.”
다른 날은 “블로그 강의해요.”
영상 편집을 하고 나면 “영상 제작자예요.”
아이들과 놀다가 온 날은 “전통놀이 수업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냥 “이것저것 해요.”로 얼버무릴 때가 더 많았다.
그날도 그랬다.
지역 매거진 작업을 하며 디자이너 선생님과 몇 번의 미팅을 가졌고,
우리는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금세 가까워졌다.
그녀는 오랫동안 디자인 작업을 해온 사람이었고,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라고 했다.
몇 번의 수정보완 끝에 작업을 마친 날,
우리는 편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밥을 먹으며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선생님은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질문 속에는
“어쩌다 이 길에 오게 되었는지”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하는지”
“그래서, 뭐 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지”
수많은 물음표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명함이 여러 장이고, 일도 매번 달라지니까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그리고 나는 대답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처럼 작아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질문이 내게 어려웠던 이유는
‘정체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체성을 ‘한 줄’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람이다.
엄마이기도 하고, 강사이기도 하고, 콘텐츠 기획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일은 하나가 아니어도 괜찮다.
이제 누군가 또 묻는다면,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어요.”
그걸 직업으로 부르든, 삶으로 부르든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