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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Oct 04. 2024

교도관이 문제수를 만든다

  D교도소 근무 당시 수용질서를 잘 잡기로 유명했던 어느 선배가 퇴직을 1년 앞두었을 무렵 지난 교도관 생활을 돌아보니 약한 놈들만 두드려 잡았고 진짜 센 놈들은 잡지 못했던 것 같다는 말을 하며 회한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며 선배와 같은 G교도소에 수용되었던 조폭 두목 조ㅇㅇ의 테니스 파트너였다는 선배 직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G교도소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그 선배를 욕했지만 그 선배도 하급직원이었던 때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선배 교도관 한분이 교도관이 문제수를 만든다는 말을 퇴직한 지금 이해하게 된 것은 몇 년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아내를 돌보면서 아내를 자극하면 상태가 극도로 안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정신질환자들이 이상행동을 할 때 강하게 억누르며 제압하려 하다가 극도로 흥분하여 난동을 부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 같은 수용자가 어떤 직원의 말은 고분고분 잘 듣기도 하는 모습을 보았고 실제로 경험한 사례도 몇 건 있다.


  미결사동에서 후배교도관이 알코올 금단 증세를 일으켜 이상행동을 하고 있는 수용자와 계속 얘기를 주고받기에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수용자가 환각 증세를 일으켜 엉뚱한 얘기를 하는데 계속 맞장구를 쳐주며 재미있게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나는 후배직원한테 장난치지 말라고 하였으나 후배직원이 했던 행동이 정신질환자들을 상황에 맞게 대응하며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파 미군 수용자 온몸을 자해하여 피로 거실 벽에 이상한 기호를 그리고 난폭한 행동을 며칠간 계속하고 있을 때 어떤 직원에게는 강한 공격성을 보이고 어떤 직원을 대할 때에는 고분고분하게 지시에 따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내가 미지정 사동 담당으로 갈 때 동료교도관들이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수용자와 상습규율 위반자 등 난폭한 수용자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동료 직원들의 우려를 떨쳐버리고 잘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수용자들이 출역, 교육, 가석방, 처우급, 신상문제 상담 등에 대해 물어보면 내가 아는 것은 대답해 주고 모르는 것은 관련과 직원들에게 알아보고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붙이는 수용자들이 많아 그들을 일일이 상담해 주다 보면 아침에 사동에 들어가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이다 퇴근할 무렵엔 다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 시절 어느 노인 수용자가 준 쪽지에 쓰인 글은 나를 뿌듯하게 하였다. "존경하는 주임님! 3하 1실 박ㅇㅇ입니다. 15일에 출소하는데 오늘 아니면 못 뵐 것 같아 문안드립니다. 있는 동안 수용자에게 정신적으로 또 모든 면에서 아량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과기록을 아시다시피 많은 교도관들을 접하였으나 주임님처럼 권위적이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는 분들은 드뭅니다. 앞으로 건강하시고 더 높이 승진하시기 비옵니다. 박ㅇㅇ 드림"


  가난하고 병들은 노인수용자들은 관에서 지급하는 속옷, 내의도 추가로 지급해 주면 고마워하며 잘 입어서 입출소실에서 입출소 담당 몰래 몇 개씩 가져다주기도 하고 챙겨 주었더니 이런 쪽지를 주고 출소하였다.


  대전교도소로 전출 가서 3년 동안 수많은 문제수들과 사건들을 경험하고 천안에 복귀해서 이곳저곳 돌아보며 몇 달 지났을 때 희한한 일을 경험하였다. 대전에서 상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며 징벌을 수차례 받았던 수용자 4명이 천안에서는 조용히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천안으로 이송 온 지 몇 달 되었는데도 있는지도 몰랐다가 우연히 마주쳐 서로 알아보았는데 천안에서 조용했던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니 천안 직원들은 소년교도소 시절부터 수용자들에게 잘해주고 상담도 잘해줘서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은 3천 명이 넘는 수용자에 사형수도 있고 무기수 120여 명에 문제수들이 많아 직원들이 일일이 응대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강하게 제압해야 하는 수용자들이 많은 대전에서는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수용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줄 수 없는 여건이었던 것 같다

  

  정신질환자들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지금 교도관으로 근무할 때 이런 것들을 알았다면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상당수의 문제수는 교도관이 만든다는 선배교도관의 말이 퇴직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문득 떠오르며 가슴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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