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행착오와 실패의 성과
한 작기의 전체 프로세스는
[원재료의 주문 → 온실의 소독 → 원재료의 준비 → 파종 및 정식 → 재배 → 수확 → 판매]
로 단순하다. 하지만, 이 전체 프로세스가 완성되려면 더 작은 단위 : 즉 시간 단위, 일 단위, 주 단위, 월 단위:의 세부 프로세스가 모두 관리되어야 한다.
따라서, 생산관리 방법론을 농업 생산에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단계는, 당연하게도 온실 관리자가 하고 있는 일을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생산관리체계를 스마트팜 온실에 적용하는 것도 같은 시작을 거쳤다.
처음 온실 운영을 시작했을 때, 하루하루가 변수가 가득했다.
어떤 날은 시설 점검을 하다가 하루를 다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병해충 대응을 하느라 예정했던 농작업이 미뤄졌다.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다음에도 똑같이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비슷한 문제가 다시 발생하면 또 처음부터 대응해야 했다.
‘이게 과연 맞는 방식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매일 아침 온실에 출근하는 순간부터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기록하기로 했다.
며칠 동안 기록한 내용을 정리해 보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정해진 루틴이 있었다. (시설 점검, 환경 데이터 확인, 작물 상태 확인 등)
매주 반복되는 주 단위 작업이 있었다. (적엽, 유인 작업, 영양분 조절 등)
월 단위로 체크해야 할 더 큰 흐름도 있었다. (생육 단계별 주요 변화, 병해충 경과 체크 등)
패턴과 흐름 그리고을 연결시키다 보면 정의와 분류가 가능하다.
정리한 내용들을 큰 갈래로 분류하다 보니, 온실 관리 업무를 크게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인력관리업무: 온실 작업자 관리, 농작업 지시 및 성과 관리
작물관리업무: 생육 진단, 작물 이상 감지, 병해충 관리, 재배 전략 적용
시설관리업무: 시설 점검, 유지보수 및 긴급 대응
경영관리업무: 물품 구매 및 재고 관리, 판매 및 매출 관리
관계관리업무: 원재료 공급업체, 농산물 판매업체, 시설 관련 업체와의 협력
이렇게 정리하니, 각 업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같은 작물관리업무라도 매일 해야 하는 것과, 긴급할 때만 대응해야 하는 것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업무의 성격에 따라 다시 분류해 보았다.
루틴업무: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수행해야 하는 업무 (예: 데이터 획득, 작물 및 시설 이상 예찰)
기본업무: 필수적인 농작업으로 [계획-지시-모니터링-피드백] 시스템이 중요한 업무 (예: 적엽, 적과, 순 자르기, 유인, 수확 등)
보조업무: 기본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지원 업무 (예: 부산물 처리, 물품 이송 등)
이슈대응업무: 피해범위를 판단해서 대응의 정도와 속도를 판단해야 하는 업무 (예: 시설 보수, 병해충 방제)
이렇게 업무를 정리하고 보니,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업무가 하나의 체계로 정리되었다.
사실 스마트팜 온실 운영을 처음 시작하면서는 너무 세세한 것부터 신경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나 스스로도 들었다. 하지만, 생산관리라는 것이, 업무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되뇌였었다.
나무 하나하나를 보는 것을 정리하고 전체 그림을 관조할 수 있게 된 것도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사실 아직도 운영관리 시스템을 계속 개선하는 중이다. 이런 정리와 개선의 과정을 거치면서 농업 생산관리 체계는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립되는 것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기상이변으로 과거 동일한 시점의 상황과 다른 내부 시설과 작물 상태. 그에 따라 비슷한 듯 다르게 수행되는 업무, 작물과 시설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무.. 그 통제 불가능한 것들의 영향을 최소화한 시스템을 만드는 건 수많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했다.
나와 우리 팀은 매뉴얼을 업데이트하고, 더 나은 신뢰도를 가진 데이터를 획득하는 동시에 데이터 해석을 좀 더 빠르게 하기 위해 기술을 개선하며, 반복적인 업무도 끊임없이 비효율성을 검토하면서 지금도 지속적으로 온실 운영의 체계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지금 우리가 쏟는 다른 온실에서는 필요로 하지 않는 노력들이 앞으로의 자동화된 온실에 가치 있게 쓰인다는 믿음으로.
그래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생산관리에서 기대하는 그것과 역시 같다!
루틴업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을 정의할 수 있는 업무다. 또한, 다른 환경(온실이 바뀌거나, 작물이 바뀌는)에서도 마찬가지로 수행해야 하는 업무가 많다. 즉, 매뉴얼화가 필요한 업무인 것이 명확하다. 나는 온실과 작물 점검에서 데이터획득, 심지어 퇴근 전 전기장비 점검까지, 소소하지만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업무들을 매뉴얼화하고 누가 담당하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표준화했다.
루틴 업무를 통해 신뢰도가 높은 데이터 획득이 가능해지면, 이 데이터를 해석해서 얻어낸 전략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내가 운영하는 온실에서는 환경 데이터 + 생육 데이터 + 작업 데이터가 실제 현장의 상황을 왜곡하는 정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덕분에 매일, 매주 그리고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데이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최소 3년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는 재배 전략 세우기도, 근거 기반한 논리적인 분석의 도움을 받으면 필요 시간을 절반으로 축소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기도 했다.
작물이나 시설의 조그만 변화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만든 건, 루틴업무가 잊지 않고 수행되게 한 운영시스템 덕분이었다. 미리 설정된 업무의 주기별로 해당 일(Day)이 되면 업무가 캘린더에 자동으로 등록되게 만든 이 시스템 안에는, 업무별 매뉴얼도 함께 들어있어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확인이 가능하다.
-내가 활용하는 온실운영관리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이상상황을 루틴업무를 통해 빠르게 발견하면, 피해범위를 판단하여 대응의 정도와 방법을 ‘이슈대응업무’에 정리된 것을 참조해서 선택 수행하게 된다. 이 정리 내용 안에는 전문가의 컨텍포인트도 담겨 있어, 정리가 안된 업무의 경우 누구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지도 찾아볼 수 있게 되어있다.
시스템적으로 루틴 업무를 잊지 않고 수행하게 하면 루틴이 습관이 되어 업무 수행 시간을 현저하게 줄여준다. 이것이 수많은 책에서 이야기하는 습관의 힘일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작업들 안에서 끊임없이 비효율성을 찾아 개선하는 일이다. 작업동선을 파악해서 작업에 필요한 물품의 정 위치를 찾는 것에서부터,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 불필요한 일을 삭제하고 효율을 개선해 줄 수 있는 도구나 새로운 새로운 기술들을 도입하는 것들까지. 시간의 절감은 단순히 시간 비용을 줄여주는 효과 이상으로,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투자로 이어진다.
"본 게시글의 이미지 및 콘텐츠는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All right reserved @MSG, Ma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