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연약한 구원

당신의 고단한 노동은 누구의 캔이 되는가?

by 거북이

목요일 저녁, 11시 넘어 퇴근하는 발걸음이 유난히도 무겁습니다. 주말의 달콤했던 휴식을 뒤로하고 출근해야 했던 월요일과는 또다른 묵직함이 밀려듭니다. 일주일 치의 피로가 덕지덕지 발목에 들러붙는 시간. ‘아이들은 이미 자고 있겠지?’ 라고 혼잣말하며 도어락을 누릅니다. 도어락을 누르는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에도 피로가 묻어나는 듯합니다.


"정신 좀 차리고 일하세요.“

올해만 벌써 다섯 번째였습니다. 팀장님은 나를 아무도 없는 회의실로 불렀습니다. 닫힌 문 안에서 나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일한다고 생각했으나 돌아온 것은 결과에 대한 냉소였습니다.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의 입은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비굴하게 내뱉을 뿐입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참아내며 사는 걸까.'


순간, 머릿속에는 아이들의 학원비 청구서가 스치고, 회사 조직안에서 무언의 규칙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나가줘야지 내 뒤에 대기하고 있는 후배들도 승진할 수 있어’ ‘얌체같이 월급 루팡이나 할 수는 없지’ ‘회사에서 나의 가치와 쓸모를 증명해 내야해’ 라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는 것이 전쟁터가 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때 겨우 목숨 하나 건지고 고향집으로 터덜터덜 향하는 패잔병이 됩니다. 적어도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는.


"꾸르릉!"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툭’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나는 미세한 소리.

그것은 하루 종일 떨어져 있던 집사와 조우하며 반가워하는 고양이의 ‘진동 섞인 인사’, 우리집 고양이 하늘이의 트릴링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입의 혀로 내는 소리가 아닙니다. 목구멍에서 진동을 일으키며 내는 소리이며 콧소리와 같기도 합니다.)

녀석은 어깨를 수그리고 엉덩이를 번쩍 들고 기지개를 폅니다. 그리고 내 종아리를 의도적으로 스치며 지나갑니다. 온종일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있던 종아리에 작고 보드랍고 말캉한 온기가 닿았습니다. 이윽고 녀석은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습니다. 신체 중 공격에 가장 취약하다는 부위인 하얀 배를 무방비하게 활짝 드러내고서.


완전한 복종이자, 경계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한한 환영. 회사에서 그토록 증명해야 했던 나의 가치가, 너에게는 이토록 쉽게 인정받는구나. 너는 내가 무엇을 성취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배를 보여주는구나...


거친 손끝으로 녀석의 이마와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끼어있던 피로가 녀석의 골골송을 타고 흩어집니다. 악다물었던 입가의 근육이 스르르 풀리고, 입꼬리는 나도 모르게 올라갑니다

그토록 찾으려 헤맸던 삶의 이유가, 실은 이렇게나 가까운 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학원비며 생활비 등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참아내야 한다는 분노도 이 무해하고 말캉한 생명체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나도 하늘이 너처럼 무방비가 되는구나. 하루종일 걸쳤던 무거운 갑옷을 내려놓습니다. 복잡했던 질문들이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순간입니다. 녀석의 하얗고도 말캉한 배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들 밥값 버는 거지, 뭐.“


나는 세상을 바꾸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 출근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강한 것, 무거운 것, 진지하고 복잡한 것이 나를 무릎 꿇게 하지 않습니다. 나의 구원은, 언제나 가장 작고 가볍고 연약한 얼굴을 하고 나를 굴복시킵니다. 그렇게 나는 철저하게 복종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