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간만의 휴가를 얻어 친구가 있는 지역에 놀러갔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업에서 만난 25년지기 내 친구. 친구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나와 같은 대학을 다니면서도 수능을 계속 보았습니다. 몇 번의 수능 끝에 지금은 원하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생은 글렀어. 다음 생에는 꼭 다정한 남자 만나서 알콩달콩 살고 싶어."
‘니가 데이트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친구가 한 말입니다. 친구가 내건 이상형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돈? 지위? 명예? 아닙니다. '삐지지 않는 다정한 남자' 랍니다. 어쩌면 가만히 있어도 눈부셨던 지금보다 어렸던 날, 사소한 일로 토라져 헤어진 인연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는 주변 친구들이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리는 동안, 열심히 돈을 벌고 가족들의 빚을 갚느라 그렇게 2,30대를 보냈습니다.
친구는 매력있고 열정적이었습니다. 무엇이 자기를 기쁘게 하는 줄 알았고, 하고 싶은 취미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즐거움은 늘 '해야 할 일' 뒤에야 허락했습니다. 집안의 빚을 갚고, 번듯한 집을 사고, 안전벨트가 자동으로 죄어오는 자동차를 사는 등 남부럽지 않은 경제력을 갖추었건만, 문득,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고 합니다.
어느 새벽, 친구 아파트에 화재경보가 울렸던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잠이 깬 친구는 본능적으로 반려묘 두 마리부터 찾았다고 합니다. 겁에 질려 각각 보일러 구석과 침대 밑으로 숨어버린 눈이 동그란 녀석들. 녀석들을 억지로 끄집어내 두 개의 이동캐리어에 넣고 앞뒤로 캐리어를 짊어졌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눈물이 왜 쏟아지고 말았을까요? 어쩌면 그토록 위급한 순간에,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없고, 지켜야 할 것만 있는 상황 때문이었을까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여러해 동안 혼자 겪었을 외로움과 서러움이 마치 매캐한 연기처럼 밀려와 눈을 찔렀는지도 모릅니다.
친구가 이상형, '삐지지 않는 다정한 남자'란 단순히 성격 좋은 남자를 뜻하는 게 아닐 겁니다. 여태까지 누군가의 보호자로, 해결사로 살아오느라 지친 친구에게 더 이상 '짐'을 지우지 않는 사람이겠지요. 눈치를 살피게 하는 대신, 묵묵히 따스한 곁을 내어주는 어른스러운 성품의 사람일 겁니다.
“친구야! 너는 치열하게 살았고, 그 대가로 찾아온 지금의 허무함조차 네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야.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멋진 너에게 ‘다음 생에는’라는 말은 정말이지 말도 말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
제 말이 맞지요? 혹시 이 글을 읽고 제 말에 동의하신다면, 주변에 ‘삐지지 않는 다정한 남자’가 있는지 눈을 빛내주시고 그냥 지나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