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로 완성된 휴식

냥이들과 함께 완벽한 리모델링을

by 거북이

악! 이럴 수가!


소파는 고양이들의 무자비한 발톱테러로 인해 너덜너덜해져 있었습니다. 공평도 하셔라, 소파 팔걸이 윗부분 양쪽이 골고루 악어 등껍질 모양마냥 파헤쳐 있었지요. 하, 녀석들아, 이게 어떤 소파인데.

처음 결혼하면서 우리집 거실에는 질 좋은 커다란 소파가 있었습니다. 철없던 막내딸을 위해 친정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신혼 가구 중 하나였습니다.


두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들의 책과 장난감, 물건들로 인해 거실이 한층 좁아 진 것 같았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친정 부모님이 사주신 소파를 냅다 치워버렸습니다. 육아와 함께 직장에 나가 일해야 했습니다. 그때 당시의 나에게 텔레비전과 소파는 단지 장식품이었을 뿐. 육체적으로도 그 소파에 앉을 여유가 없었지만 마음에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나 남편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을텐데, 나는 그것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소파를 치워버린 것입니다. 소파 탓도 아니었는데. 괜히 애꿎은 소파만 치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난 나중에서야 그래도 집에 소파가 없으면 안되겠다 싶어, 카드할부로 겨우 두 번째 가죽 소파를 들였습니다.


그런 소파였는데!


너덜너덜해진 소파를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치 후회하는 선택들에 대한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아서. 마치 딱지가 생겨 겨우 아물기 시작한 상처가 다시 헤집어져 피가 나는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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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고양이들을 위한 스크래처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집에는 삼줄이 둘둘 말아진 캣타워가 있습니다 . 그리고 카페트형, 골판지 상자형, 벽에 붙이는 형 등등 집안 곳곳에 스크래처가 즐비했지만 집사가 좋아하는 것을 녀석들도 귀신같이 알아채나 봅니다. 단지 좋아하는 방식이 다른 것일까요. 나는 정제하고 통제하고 녀석들은 자유롭게 파괴하는 쪽으로.

사실 스크래처들은 고양이들을 위한 배려인 동시에 소파를 지키겠다는 조용한 통제였던 것입니다. 나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보기 좋은 소파, 매끈한 소파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들도 태어나면서 고유한 자기 습성이 있었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었나봅니다. 가죽소파의 우툴투둘한 면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발톱을 벅벅 긁어 대고 싶은 본능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소파를 사정없이 긁어댄 후, 커다란 눈을 꿈벅이며 만족스러워하는 녀석들의 표정을 보니 혼낼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 가죽소파는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천 커버를 입고 있습니다. 단조로움이 사라지고 계절마다 어울리는 천 옷을 입을 것입니다. 여름에는 시원함이 느껴지는, 겨울에는 벨벳처럼 따듯한 질감의 천옷들을. 더군다나 고양이가 헤집어 놓은 그 깊은 상처들이 오히려 천의 마찰력을 높여 커버를 단단하게 붙들고 있습니다. 파괴가 남긴 요철 덕분에 커버는 더 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내 뜻대로 하고 싶은 통제의 마음을 내려놓자 비로소 너덜너덜해진 소파도 아늑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안락함이란 흠집 없는 상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살아있는 존재의 습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나의 뜻과 기대가 무참하게 구겨지고 알았습니다. 덕지덕지 파헤쳐진 파괴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흔적이며 공존의 흔적이라는 것을. 나는 소파에 늘어진 하품을 하는 고양이와 함께 늘어지는 휴식을 취합니다.


고양이와 소파.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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