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별빛을 먹고 자란다

<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11화

by 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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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빛난다.

가닿을 수 없어도,

우리는 빛을 보낸다.

멀리 떨어진 두 마음은

서로를 향한 흔들림으로 자란다.



밤하늘을 바라보던 순간이 있었다. 별 하나 없는 어두운 밤이었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자, 어둠 속에서 서서히 별빛이 떠올랐다. 마치 시간과 함께 어둠이 투명해지면서, 숨겨져 있던 빛들이 하나씩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듯했다. 사랑도 그랬다. 처음엔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 그저 스쳐 가는 감정이라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가슴속 어딘가에서 자라난 작은 떨림이 결국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어둠 속에서 자라나는 별빛 같았다.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빛을 받는 그런 존재로.


사랑은 단단한 땅 위에 뿌리내리는 나무처럼 물과 햇빛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땅 위에서는 위태롭고 불안정한 감정이다. 그러나 별빛을 먹고 자라는 식물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과학적으로 별빛은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별은 과거의 빛이다. 그처럼 사랑도 현재의 감정인 동시에,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이 얽혀 있는 시간의 결정체다. 그래서 사랑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별빛처럼 오래도록 우리 가슴속에 남아 빛을 발한다.


영화 <비포 선셋(Before Sunset)>에서 제시는 옛 연인 셀린과 재회한다. 9년 전 함께한 하루의 기억, 그 시간은 별빛처럼 그들의 삶 속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그 기억의 빛을 따라 서로를 다시 찾아간다. 그 하루가, 그 짧은 시간이 수년을 건너 다시 둘을 연결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시간을 초월해 남겨둔 빛이었다. 그 빛은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마침내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별빛을 먹고 자란다. 그 빛을 기억하는 이의 마음에서 자라고, 언젠가 다시 피어난다.


소설 루쉰(Lu Xun)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Darkness in the Streets of Shops)』에서 기억을 잃은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는 어딘가로 향한다.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어떤 감정, 그 감정이 그를 이끈다. 사랑은 기억보다 깊은 곳에 존재하는 빛이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 있어도 그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빛을 따라 다시 자신을, 타인을 찾아간다. 별빛처럼 오래된 감정, 그러나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사랑. 그것이 우리를 다시 길 위에 세운다.


나는 사랑을 할 때마다 별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먼 곳에서 오는 빛이 이렇게 나를 감동을 주듯, 내 마음도 누군가에게 도달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이 언젠가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빛날 수 있을까. 사랑은 별빛처럼, 직접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 그 시간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다른 형태로 빛난다. 노래, 시, 영화, 그리고 누군가의 따뜻한 말 속에서. 사랑은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자라난다. 별빛을 먹고 자라나는 식물처럼, 현실의 양분이 아닌 감정과 기억, 그리고 시간이 만든 빛을 통해.


때로는 사랑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다. 감정은 바래고, 서로를 향한 마음도 흐릿해진다. 그럴 때면 우리는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별빛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계속 도달한다. 비록 그 빛이 약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긴 시간과 깊은 우주의 역사가 담겨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한때 불타올랐던 감정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 감정이 만들어낸 관계와 기억은 여전히 누군가의 삶 속에 남아 은은한 빛을 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잊지 못한다. 그 빛이 계속해서 우리를 비추기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서 쿠퍼는 딸 머피와의 사랑을, 우주를 넘는 힘으로 믿는다. 그는 말한다. “사랑은 우리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중력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은 별빛처럼 미세하지만 강력하게 존재를 증명한다. 쿠퍼가 머피에게 보낸 메시지는 수십 년을 건너 도달하고, 결국 머피는 그 사랑을 받아 미래를 구하는 열쇠를 찾는다. 사랑은 별빛처럼, 언젠가는 도달한다. 그 빛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한다.


사랑은 별빛을 먹고 자란다. 그 말은 사랑이 현실을 넘어서 자라난다는 뜻이다. 현실의 제약 속에서 힘들고 고단한 순간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미소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지나간 기억 속의 한 장면에서 사랑의 빛을 본다. 그리고 그 빛은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삶이 어두워질수록, 그 빛은 더욱 선명하게 우리를 비춘다. 사랑은 어둠 속에서 자라나는 유일한 감정이다. 별빛처럼, 멀리서 왔지만 깊이 스며드는 감정. 그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별빛이 도착하고 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도, 그 빛은 우리를 감싸고 있다. 사랑도 그러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마음에서 시작된 사랑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도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그 빛을 통해 다시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별빛을 먹고 자란다. 그 빛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사랑을 믿게 된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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