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서막 – 하나였던 길이 두 갈래로 찢기다
땀이 배는 늦여름의 아침.
두석은 허름한 신문 가판대에서 신문을 들춰보다가 발이 멈췄다.
굵은 활자.
“몽양 여운형, 괴한에 피살당하다. 통일운동가, 향년 61세.”
손끝이 떨렸다. 그의 눈앞에, 옛 동지의 음성이 되살아났다.
그는 말하곤 했다.
“우린 좌도, 우도 아닌, 조선으로 가야 합니다.”
밤례가 조심스레 묻는다.
“그분이... 죽으신 거예요?”
두석은 신문을 접으며 대답했다.
“그분은 조선을 붙잡고 있던 마지막 손이었어.”
여운형의 죽음은 예고된 파국이었다.
그가 빠진 다음 주, 미소공동위원회 제2차 회담이 다시 결렬되었다.
미국은 ‘공산당 배제’를, 소련은 ‘우익 배제’를 주장했다.
서로가 서로를 협상 대상이라 부르지 않았다.
서울 시내 곳곳엔 전단이 흩날렸다.
“반탁은 독립이다!”
“분단은 망국이다!”
확성기엔 하루 종일 ‘단독정부 수립’이 반복되었다.
두석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두 나라가 되어가는 건가…”
순형은 이제 경찰서 고등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국민보도연맹, 우익 민병대, 반공 청년단.
그는 말한다.
“공산당은 인간이 아니야.
우리라도 미국 편에 붙어야 살지.”
두석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모든것을 잃은 것만 같았다.
“ 어느 날부턴가 총 대신 거울을 들고 있는 듯했지.”
두석은 감시 대상이 되었다.
젊은 교사 중 한 명이 ‘의심되는 언동’을 이유로 끌려갔다.
그는 단지 식량 배급의 부조리와 평등한 교육을 말했을 뿐이었다.
경찰은 그를 ‘친소분자’로 몰았다.
“이제는 중도도 죄인가요?”
“요즘 세상에 양비론은 간첩이지.”
경찰은 비웃듯 말했다.
밤례는 두석에게 물었다.
“이젠 우리를 지켜줄 이가 없어요?”
두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할 말을 아직 못 찾았다.
며칠 뒤, 몽양 여운형의 관이 시내를 지나갔다.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관 위엔 태극기와 조선중앙일보 한 부가 덮여 있었다.
두석은 그 장면을 멀리서 바라봤다.
수천 명이 뒤따랐지만, 아무도 외치지 않았다.
“그분은 살아서 외로웠고,
죽어선 더 큰 전쟁을 남겼다.”
그해 11월, 미국은 한국 문제를 유엔에 상정했다.
소련은 반발했다.
북한은 조선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체 정부를 세우기 시작했다.
남한에선 ‘남한만의 총선거’가 준비되기 시작했다.
민중은 무력했고, 지도자는 죽었으며, 협상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하나였던 길이 두 갈래로 찢겼다.
그 틈으로, 피가 흐르고 바람이 들었다.
#작가의 말
한 사람의 죽음이 역사의 대문을 닫고,
총부리가 말을 대신하던 시대가 열렸다.
여운형은 조선을 지키는 마지막 가교였고,
그가 떠나자, 강물은 동과 서로 갈라졌다.
분단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었다.
서로 듣지 않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