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새벽, 고금도 전역에 군홧발이 울려 퍼졌다.
여수에서 급파된 계엄군, 목포 경찰, 그리고 우익청년단까지 합세한 병력이 섬에 쏟아져 들어왔다.
“이제 이 섬은 전부 반란군 소굴이다. 전원 색출하라!”
지휘관의 명령이 메아리치자, 대대적인 토벌이 시작됐다.
바다는 이미 봉쇄됐다.
갯바위에선 총검 든 군인들이 어부들의 배를 불태웠고, 바다에 뛰어든 이들은 차가운 겨울 물결 속에서 총탄에 스러졌다.
마을마다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남자들은 마당에 끌려 나와 새끼줄에 묶였고, 부녀자와 아이들마저 총구 앞에 떨었다.
" 누가 반란군 숨겨줬어?”
대답이 없자 곧바로 군홧발이 얼굴을 짓눌렀다.
이웃끼리 서로 이름을 대지 않으면, 집단으로 매질을 당했다.
김정암 노인은 무릎을 꿇은 채 마지막 힘을 짜내듯 말했다.
“복수… 그게 죄라면, 내가 죄인이다.”
그러자 군인의 개머리판이 그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피가 눈 위로 튀었다.
지서 습격에 가담한 생존 군인들과 연루자들은 산으로 몸을 숨겼다.
박준서는 지혈이 되지 않는 팔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섬 전체가 감옥이야. 그래도 산으로 가야 한다. 여기선 버틸 수 없다.”
밤이 되자, 산등성이 곳곳에서 작은 불빛이 오갔다.
배고픔에 떨며 산짐승처럼 웅크린 그들의 눈빛엔 두려움보다 결의가 깊게 박혀 있었다.
계엄군은 곧 전술을 바꿨다.
“산을 포위한다. 아래서부터 몰아쳐라!”
수백 명의 군인과 청년단이 사방에서 산을 포위하며 위로 올라갔다.
나팔 소리, 총성, 횃불이 동시에 터졌다.
마치 토끼몰이 사냥처럼 산은 점점 좁혀졌다.
박준서 일행은 계곡 사이로 도망쳤으나, 사방에서 쏟아지는 탄환이 땅을 갈라놓았다.
정동식이 쓰러졌다. 총탄이 허리를 관통했다.
“가라… 난 여기까지다!”
그가 몸을 던져 수류탄을 터뜨리자, 계곡은 불빛으로 뒤덮였다.
해가 떠오르기 전, 산자락을 따라 20여 개의 소부대가 배치되었다.
지휘관은 손을 높이 들고 간단히 말했다.
“토끼몰이다.
동쪽에서 몰아 서쪽 바닷가로 쓸어버려라.
살아있는 건 남기지 마라.”
군인들과 청년단은 쇠북과 피리, 고함을 섞어 산을 울렸다.
포위망은 점점 좁혀왔고, 총성은 숲을 갈라먹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정상 근처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바다는 아래서 포화로 봉쇄됐고, 산 위는 불길에 휩싸였다.
김철우가 하늘을 보며 낮게 웃었다.
“우린 결국, 고향에서 끝나는구나.”
총성이 산허리를 울리며 차례차례 그들의 몸을 꿰뚫었다.
눈발이 흩날리는 새벽, 고금도의 산은 피와 화약 냄새로 물들어갔다.
고금도의 산자락은 그날 하루 동안 핏빛 강물이 되어 흘렀다.
생존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계엄군은 시체를 마을 어귀에 늘어놓고 주민들을 강제로 불러 세웠다.
“이게 반역의 끝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에는 공포보다, 오히려 불씨 같은 분노가 번져갔다.
#작가의 말
“토끼몰이”라는 말은 원래 사냥의 방식이다.
그러나 1948년 고금도의 산에서는, 사냥꾼도 토끼도 모두 같은 사람들이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이념의 이름으로,
서로를 몰아 죽여야 했던 비극.
그 숲에는 아직도
죽은 자들의 숨결이 남아 있다.”
역사는 종종 ‘토벌’이라는 이름으로 씌어진다.
그러나 고금도의 산에서 몰려 죽어간 이들에게 그것은 사냥이었다.
그들은 반란군이자, 동시에 누군가의 아들·남편·형제였다.
섬은 바다로 봉쇄되었고, 산은 피로 봉쇄되었다.
그 속에서 고금도의 사람들은 한동안 침묵으로만 살아남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