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30

짐승 같은 세상

by 강순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가 쓰러지던 순간, 내 심장도 함께 멎은 듯했다. 귀를 찢는 총성, 코를 에는 피비린내. 아버지의 몸은 산자락에 쓰러져 있었고, 눈은 끝내 감기지 않았다. 나는 그 눈을 감겨 주지 못했다. 그저 겁에 질려 달아나기만 했으니까.

그 순간부터 세상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금당도는 짐승의 굴로 변해버렸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이름 따위 의미 없는 짐승들이 서로를 물어뜯었다. 밤이면 누군가의 비명이 공기를 가르고, 새벽이면 또 다른 누군가의 시체가 논두렁에 내버려졌다.

내게는 단 하나의 이름만 남았다.
‘두석의 자식.’

아버지가 죽은 그날부터 나는 지서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쇠로 된 의자에 묶인 채, 군홧발이 내 옆구리를 내리칠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고문이라기보다는 증오 그 자체였다.
“네놈 아비처럼 빨갱이 짓을 할 작정이냐?”
그들은 늘 같은 말만을 되풀이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나는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다. 하지만 내 항변은 항상 피와 침에 섞여 흐려져 갔다.

지서에서 돌아올 때마다 어머니(밤례)는 눈물로 나를 맞이하셨다.
“군수야, 제발… 입 다물고 조용히 살아야 한다. 산에 가지 마라, 아무랑도 어울리지 마라.”
어머니의 떨리는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지만, 그 손길은 너무나 차가웠다. 우리 집은 이미 바람 빠진 배처럼, 아무런 방향도 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마을은 더 이상 내 고향이 아니었다.
이웃은 서로를 고발했다.
어제까지 함께 논에 물을 대던 사람이, 오늘은 내 이름을 지서에 적어 넘겼다. 믿음이라는 것은 썩은 새끼줄처럼 끊어져 버렸고, 남은 것은 오직 공포뿐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버지, 왜 돌아가셨습니까. 왜 저를 두고 먼저 가셨습니까. 이 지옥 같은 세상을 홀로 견디라 하셨습니까.’

아버지가 떠나신 후, 내 가슴속에는 검은 구멍이 패어 있다.
아무리 숨을 쉬어도 그 공허는 메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미 절반쯤 죽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포기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그리던 세상,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그 꿈을 나 혼자만이라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결국은 짐승이 되어 버릴 테니까.

#작가의 말

군수의 독백은 단지 한 청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아버지를 잃고, 지서의 고문과 고발의 공포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수많은 이들의 절규입니다. 국가의 폭력은 개인의 삶을 무너뜨려 놓았고, 고향은 더 이상 따뜻은 품이 아닌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감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군수의 간절한 희망은, 우리가 이 비극적인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유를 생생하게 전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