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낡은 왕관 3

새로운 교황이 될 뻔한 사람

by 강순흠


칼빈은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처음 그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제네바에 왔다.
사람을 세우기 위해 설교했고,
교회를 살리기 위해 글을 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기만”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법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칼빈은 뭐라고 말했는가?”
“그의 해석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성경보다 먼저 불렸다.
그는 그것이 두려웠다.
사람이
말씀 위에 서는 순간,
교회는 다시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제네바는 여전히 불안정했고,
옛 가톨릭 세력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며,
개혁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질서가 필요하다.”
“진리를 보호해야 한다.”


그 순간,
말씀은
검이 되었고,
교회는
성채가 되었다.
이단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위협이 되었고,
다른 해석은
죄의 가능성이 되었다.

세르베투스의 재판이 열리던 날,
사람들은
그를 보았다.
침묵한 채
판결을 듣는 사람.
그는 불을 붙이지 않았고,
형장을 지휘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불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싶어 했다.
어쩌면 그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사람이 살아남는다면,
교회는 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고,
개혁은 조롱거리가 될 것이며,
진리는 상대화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침묵했다.
그 침묵은
칼보다 무거웠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제네바의 교황.”
그는 그 별명을
싫어했지만,
부정하지도 못했다.
그는 여전히
교황을 증오했고,
권위를 비판했으며,
우상숭배를 경계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다시 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도시의 기준이 되었다.
그는 원하지 않았던 자리에
서 있었다.
교황이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교황처럼 살게 된 순간이었다.

밤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성경을 펼쳤다.
“주여,
나는 주님의 종입니까,
도시의 주인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성경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답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평생
이 두 자리 사이에서
살았다.
말씀의 종으로 살고 싶었던 사람과,
질서의 수호자가 되어버린 사람 사이에서.
그의 삶은
완성된 개혁이 아니라
중단된 질문으로 남았다.

#작가의 말
이 글에서 저는
칼빈을 영웅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폭군으로 단순화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교회를 사랑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제도가 되었고,
제도는
권력이 되었습니다.
칼빈의 실패는
개인의 도덕성보다
구조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개혁은
성공하는 순간
자신이 부수려 했던 자리를
닮아 갑니다.

이 이야기는
16세기의 칼빈을 말하지만,
동시에
오늘의 교회를 묻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말씀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말씀으로 서로를 재판하고 있는가.”
그리고 더 깊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지킨다는 이유로
우리는 누구를 짓밟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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