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들고 문 앞에 선 사람
칼빈은 처음부터 싸우려 한 사람이 아니었다.
혁명을 꿈꾼 적도 없었고, 교황을 끌어내릴 계획도 없었다.
그는 다만 질문을 품고 있었을 뿐이다.
“교회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칼빈이 살던 시대의 교회는 거대했다.
돌로 지은 성당은 하늘을 향해 솟았고,
제단 위의 금빛 장식은 태양보다 눈부셨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죄는 돈으로 씻을 수 있었고,
구원은 종이 한 장으로 보증받을 수 있었다.
면죄부를 사면 천국의 문이 열린다고 믿게 만드는 시대였다.
칼빈은 그 광경 앞에서 숨이 막혔다.
그는 신학생이었고, 성경을 공부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가 읽은 성경과
교회가 가르치는 말은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성경은 말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교회는 말한다.
“헌금으로, 증서로, 복종으로 구원을 사라.”
그는 조용히 책을 썼다.
분노의 글이 아니라, 고백의 글이었다.
『기독교강요』라는 책은
교황을 공격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글이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구원의 근거는 행위가 아니라 은혜다.”
“성경이 기준이지, 제도가 기준이 아니다.”
이 문장들은 칼보다 날카로웠다.
피를 흘리게 하지는 않았지만,
기존 질서를 흔들었다.
사람들은 이 젊은 신학자의 글을
몰래 복사해 읽었고,
짐 속에 숨겨 국경을 넘겼다.
그리고 그는 쫓기기 시작했다.
프랑스를 떠나야 했고,
이름을 숨겨야 했으며,
밤마다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했다.
그는 도망자였다.
개혁자는 늘 그렇게 시작한다.
교회 안에서 시작했지만
교회로부터 밀려난 존재로.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제네바라는 도시로 들어갔다.
“여기서 교회를 다시 세워 달라.”
그 도시는 혼란 속에 있었다.
로마 교황청과 결별했지만
어떻게 신앙 공동체를 세워야 할지 몰랐다.
칼빈은 망설였다.
그는 도시를 다스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법을 만들기보다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곳에 남았다.
그는 생각했다.
“이곳에 말씀의 교회를 세울 수 있다면.”
그때까지 그는
아직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말씀을 들고 두드리는 자였다.
#작가의 말
칼빈은 처음부터 권력을 원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도를 무너뜨리려 한 정치가도 아니었고,
군중을 선동한 혁명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회가 성경에서 멀어졌다”는 사실에
숨이 막힌 한 신학생이었습니다.
작가는
‘승리한 개혁자’가 아니라
‘쫓겨난 신앙인’으로서의 칼빈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개혁은 언제나
밖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양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의 교회와 오늘의 신앙인에게
이 질문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문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문을 지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