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낡은 왕관 5

교회다운 교회를 꿈꾸던 도시

by 강순흠


제네바에 칼빈이 머물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기독교 강요』는 국경을 넘어 읽혔고,
젊은 신학자의 문장은
불씨처럼 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몰려왔다.
로마 가톨릭을 떠났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사람들,
믿고 싶었으나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물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칼빈은 대답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말씀 앞에 선 사람들입니다.”

그 말은 단순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의 설교는
감정을 자극하지 않았다.
기적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성경을 한 줄씩 풀어 읽었다.
“하나님은 거래의 대상이 아닙니다.”
“은혜는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놀랐다.
교회는 오랫동안
보는 것이었지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배는 달라졌다.
라틴어 대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성경이 읽혔다.
찬송은
성가대의 노래가 아니라
회중의 노래가 되었다.
설교는
하늘 이야기만 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남자,
폭력을 견디는 아내,
부정한 장사꾼,
거짓 증언을 일삼는 관리까지
모두 말씀 앞에 세웠다.

사람들은
비난받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교회는
빠르게 자라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에서,
독일에서
신앙 때문에 쫓겨난 사람들이
제네바로 몰려왔다.
그들은 이 도시를
“피난처”라 불렀다.
어떤 이는
“작은 예루살렘”이라 불렀다.

칼빈은
목회자만 세운 것이 아니었다.
학교를 세웠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그곳에서 자란 학생들은
다시 유럽으로 흩어졌다.
프랑스로,
네덜란드로,
스코틀랜드로.
그들은
칼빈의 제자가 아니라
‘개혁된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제네바는 도시가 아니라
신학교다.”
교회는
교회다워 보였다.
성직자의 타락은 줄었고,
미신은 사라졌으며,
면죄부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경을 갖기 시작했고,
자신의 언어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모든 것이
‘말씀의 통치’가 아니라
‘말씀의 체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교회가 자라면서
질서가 필요해졌고,
질서는 규칙이 되었으며,
규칙은 법이 되었다.
예배에 빠지면 벌금이 부과되었고,
옷차림이 경건하지 않으면
불려가 훈계받았다.

사람들은
점점 스스로를 묻기보다
서로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누가 웃었는지,
누가 술을 마셨는지,
누가 의심스러운 말을 했는지.
말씀으로 시작한 교회는
규율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되었다.

칼빈은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말했고,
은혜를 말했으며,
타락한 교회를 미워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더 이상
문 앞에 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문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고,
질서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으며,
진리를 지키는 심판자의 얼굴을
조금씩 닮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한 사람이 나타났다.
세르베투스였다.
그는
삼위일체를 부정했고,
칼빈의 신학을 비웃었으며,
공개적으로 도전했다.
도시는 술렁였다.
“진리를 지켜야 한다.”
“이단은 도시를 더럽힌다.”
세르베투스는 체포되었고,
재판을 받았으며,
결국 화형을 선고받았다.
그 불길은
한 사람만 태운 것이 아니었다.
‘다른 믿음’이
불로 정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날 함께 태어났다.
칼빈은 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불을 끄지도 않았다.
교회를 개혁하려던 사람은
교회를 지키는 사람이 되었고,
자유를 외치던 신학자는
질서를 수호하는 자가 되었다.
그의 개혁은 성공했지만,
그의 교회는
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칼빈의 성공을 먼저
그리고
그 성공이 만들어 낸 그림자를 함께 보여 줍니다.
초기의 개혁교회는
사람들에게 진짜 희망이었습니다.
말씀 중심, 교육 중심,
양심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커질수록
“지켜야 할 진리”는
“관리해야 할 질서”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칼빈 개인의 타락이라기보다
모든 개혁이 맞닥뜨리는 시험입니다.

개혁은
제도가 되는 순간
자신이 부수려 했던 모습을
닮아 갑니다.
이 글을 통해
오늘의 교회에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시작했는가,
규칙으로 시작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문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문을 잠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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