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낡은 왕관 6

떠나는 신앙

by 강순흠


영국은
겉으로는 개신교 나라였다.
왕은 교황과 결별했고,
국가는 가톨릭이 아닌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랐다.
교황이 떠났을 뿐,
교회의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주교는 그대로였고,
권위는 그대로였고,
의식은 여전히 화려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우리는 개혁되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멀었다.”
“교회는 여전히
권력의 옷을 입고 있다.”

이 사람들을
사람들은 청교도(Puritan)라 불렀다.
깨끗하게 하려는 사람들,
교회를 말씀으로
다시 씻어내려는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은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를 진짜 교회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은 말했다.
“성경에 없는 것은
교회에 두지 말자.”
“사람의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자.”

그들의 예배는
조용했고,
설교는 길었고,
기도는 단순했다.
십자가보다
말씀을 앞에 두었고,
제단보다
성경을 중심에 두었다.

그러나
이 단순함은
위험한 선택이었다.
왕은
교회를 통해
사람을 다스리고 싶었다.
예배의 형식까지
국가가 정해 주었다.
“같은 방식으로 예배하라.”
“같은 옷을 입어라.”
“같은 말을 하라.”

청교도들은
순종하지 않았다.
“왕은 몸을 다스릴 수 있지만
양심은 다스릴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감시당했고,
벌금을 물었고,
설교를 금지당했다.
어떤 이들은
감옥에 갔고,
어떤 이들은
교회에서 쫓겨났다.

그때
청교도들 앞에
두 갈래 길이 놓였다.
하나는
침묵하는 길,
다른 하나는
떠나는 길이었다.

그들은
후자를 택했다.
집을 정리했고,
친구와 작별했고,
바다를 건너기로 했다.

1620년,
작은 배 한 척이
영국을 떠난다.
메이플라워호.
배 안에는
전사가 없었다.
군인이 없었다.
부자는 더더욱 없었다.
대신
성경을 든 사람들,
아이를 안은 어머니들,
침묵하는 아버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는
편한 나라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 수 있는
땅을 찾으러 갑니다.”

바다는
그들을 시험했다.
병이 돌았고,
굶주림이 왔다.
도착한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숲과 추위와
원주민의 땅이었다.

그곳에서
절반이 죽었다.
그래도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망자가 아니라
순례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다.
법보다 먼저
성경을 읽었고,
학교보다 먼저
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묶는 언약을 맺는다.”
이것이
계약이 되었고,
헌법이 되었고,
민주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청교도 신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산다.”
왕 앞이 아니라,
교회 앞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그래서
이 신앙은
도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작가의 말
청교도들은
싸우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떠남은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가장 먼 선택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자유를 살았습니다.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의 토양을 만들었습니다.

청교도의 신앙은
개인의 위로가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였습니다.
신앙이
정치가 되었고,
교육이 되었으며,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질문은 남습니다.
떠난 신앙은
순수해질 수 있었지만,
그 땅에서
또다시 권력이 되지는 않았을까요?
박해받던 자가
새로운 주인이 되었을 때,
그 신앙은
여전히 복음이었을까요?
청교도의 역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침묵하겠습니까,
떠나겠습니까,
아니면
다시 시작하겠습니까.”
신앙은
언제나
불편한 선택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음 세대에게
역사가 됩니다.
이제 이 신앙은
신대륙을 넘어
또 다른 땅으로 갑니다.
동쪽으로,
바다 건너,
작은 나라로.
그리고
그 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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