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낡은 왕관 7

신앙이 나라가 될 때

by 강순흠


청교도들이 도착한 땅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돌과 숲과 바람뿐이었다.
교회도 없었고,
학교도 없었고,
법도 없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세운 것은
집이 아니었다.
교회였다.
그리고 그 다음이
학교였다.
그들은 믿었다.
“말씀을 아는 사람만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글을 모르는 신앙은
쉽게 속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게 했고,
어른들에게
토론을 가르쳤다.

신앙은
기도로만 머물지 않았다.
회의가 되었고,
규칙이 되었으며,
계약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약속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묶는다.”

이 언약은
나중에
헌법이 되었고,
법치주의가 되었으며,
시민의식이 되었다.
개혁신앙은
개인의 영혼만 구원하지 않았다.
공동체의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신앙이 제도가 될 때
또 다른 시험이 시작된다.

청교도들은
박해받던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이 땅의 주인이 되었다.
그들은
질서를 세웠고,
규범을 만들었고,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른 신앙이다.”
“너희는 틀렸다.”
자유를 찾아 떠났지만,
자유를
모두에게 주지는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쫓겨났고,
어떤 사람들은
마을에서 추방당했다.

개혁신앙은
빛이 되었지만
그늘도 함께 자랐다.
그러나
이 신앙은
멈추지 않고
확장되었다.

신앙은
농장으로 들어갔고,
상점으로 들어갔고,
학교와 법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8세기,
이 신앙은
새로운 형태로
폭발한다.

대각성 운동.

설교자들은
마을마다 다니며 외쳤다.
“너는
교회의 회원이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인가?”
“네가 믿는 것은
전통인가,
아니면
회심인가?”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기 믿음을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신앙은
상속이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이 운동은
사람들의 마음뿐 아니라
정치의 언어도 바꾸었다.
“왕이 아니라
양심이 주인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
이 말들은

독립의 언어가 된다.

총보다 먼저
성경이 있었고,
헌법보다 먼저
설교가 있었다.
미국은
이렇게 만들어진 나라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모순은 있었다.
자유를 말했지만
노예를 부렸고,
평등을 말했지만
인종을 나누었다.

개혁신앙은
사회를 바꾸었지만,
완전한 사회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또다시
저항이 필요했다.
노예제 폐지 운동도
여성 인권 운동도
많은 경우
이 신앙에서 나왔다.

말씀은
한 번만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계속
세상을 찌른다.
미국에서
개혁신앙은
이렇게 자랐다.
교회가 되었고,
학교가 되었고,
국가의 언어가 되었으며,
다시
저항의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이 신앙은
다시 바다를 건넌다.
이번에는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아주 작은 나라,
오랜 왕조의 나라,
이름조차 낯선 땅으로.
조선이라는 땅으로.


#작가의 말
미국에서 개혁신앙은
“교리를 지키는 신앙”에서
“사회를 만드는 신앙”으로 변했습니다.
기도는
법이 되었고,
설교는
정치의 언어가 되었으며,
성경은
헌법의 밑그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항상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말하면서
다른 이의 자유를
제한하기도 했고,
하나님을 말하면서
자기 확신을
신처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신앙입니다.
완전하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신앙.

나는 이 이야기를 쓰며
한 가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신앙이
제도가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정의로워졌는가.
신앙이
권력이 되었을 때,
우리는
더 겸손해졌는가.

이 질문은
미국의 질문이 아니라
이제
우리의 질문이 됩니다.
이제
이 신앙은
태평양을 건너
조선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와
우리의 이야기가
그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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