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온 말씀
이 신앙은
군함을 타고 오지 않았다.
대포를 싣고 오지도 않았다.
먼저 도착한 것은
책 한 권이었다.
조선에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
이미 성경은
사람들의 품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압록강 너머 만주에서,
이름 없는 조선인들이
낯선 글자를 품고 돌아왔다.
“이 책에는
임금 말고
하나님이 나온다.”
“이 글에는
양반 말고
모든 사람이
같이 읽을 말이 적혀 있다.”
그들은
성경을 몰래 읽었고,
몰래 베꼈으며,
몰래 가르쳤다.
교회보다 먼저
독자가 생겼다.
조선의 개혁신앙은
처음부터
‘교회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경을 읽는 운동이었다.
그리고
이 신앙은
한문이 아니라
한글을 붙잡았다.
선교사들은
처음엔 한문을 배웠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이 나라의 머리는
한문으로 생각하지만,
이 나라의 가슴은
한글로 운다.”
그래서
성경은
양반의 책이 아니라
아낙네의 책이 되었고,
학자의 글이 아니라
백성의 말이 되었다.
글을 모르던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
처음 글을 배웠다.
“하나님”이라는 단어와 함께
“나”라는 단어도 배웠다.
조선은
질서의 나라였다.
위계의 나라였다.
아버지가 하늘이었고,
임금이 하늘이었으며,
법이 하늘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게 말했다.
“하늘에는
임금보다
더 큰 분이 있다.”
“그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같다.”
이 말은
신앙이기 전에
사고의 전복이었다.
그래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 신앙은
왕을 부정하지 않았으나
절대화하지 않았고,
조상을 부정하지 않았으나
우상으로 섬기지 않았다.
이 미묘한 차이가
조선을 불안하게 했다.
“저들은
하늘이 둘이다.”
그러나
이 신앙은
칼로 맞서지 않았다.
대신
학교를 세웠고,
병원을 세웠으며,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말씀은
설교에만 머물지 않고
교육이 되었고,
치유가 되었으며,
삶의 방식이 되었다.
조선의 교회는
이상한 교회였다.
건물보다
사람이 먼저 있었고,
목사보다
평신도가 먼저 있었다.
부엌에서 예배를 드렸고,
논두렁에서 찬송을 불렀다.
교회는
숨는 곳이었고,
배우는 곳이었으며,
말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 신앙은
조용히
사람을 바꾸기 시작했다.
술을 끊은 사람,
폭력을 멈춘 사람,
딸에게 글을 가르친 사람,
노비를 풀어준 사람.
개혁신앙은
처음부터
나라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사람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면
나라가 흔들렸다.
일본이
조선을 삼켰을 때,
교회는
피난처가 되었다.
성경을 읽던 사람들은
신문을 읽었고,
신문을 읽던 사람들은
세상을 보았다.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면서
토론하는 곳이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가,
천황의 백성인가?”
이 질문은
곧
역사의 질문이 된다.
개혁신앙은
조선에
총을 주지 않았다.
대신
의식을 주었다.
이 신앙은
조선을
순종의 나라에서
질문의 나라로
조용히 옮겨 놓았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제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작가의 말
조선에 들어온 개혁신앙은
서양의 종교가 아니라
번역된 신앙이었습니다.
언어가 바뀌었고,
사고가 바뀌었으며,
사람의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임금만 하늘이던 나라에
하늘 위 하나님을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혁명가가 아니었지만
순응자도 아니었습니다.
부수지 않고
심었고,
외치지 않고
가르쳤으며,
지배하지 않고
함께 배웠습니다.
이 신앙은
조선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조선 사람을
깨어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깨어남은
언젠가
저항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