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낡은 왕관 9

교회가 이름을 갖던 날

by 강순흠


말씀이 먼저 들어왔고,
교회는 나중에 생겼다.
조선의 신앙은
처음부터 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임이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
같이 기도하는 사람들,
서로를 형제라 부르는 사람들.
누가 목사인지도 모르고,
누가 장로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단지
“같이 읽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모이면
질서가 생긴다.
질서가 생기면
이름이 필요해진다.

선교사들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은 이미
작은 교회들을
곳곳에서 발견했다.
부엌에서,
초가집에서,
마루에서,
심지어는
논두렁 위에서 예배를 드리는
이상한 공동체.
“이 사람들은
이미 교회처럼 살고 있구나.”

그때
조선 교회는
하나의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가톨릭처럼
위에서 내려오는 교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아래에서 자라는 교회가 될 것인가.

조선의 교회는
두 번째 길을 택했다.
그들은
감독을 세우지 않고
장로를 세웠다.
목사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을 주지 않고
공동의 책임을 나누었다.
이것이
장로교였다.

장로는
귀족이 아니었고,
양반도 아니었다.
말씀을 아는 사람,
삶이 증명하는 사람,
공동체가 인정한 사람이었다.

“ 성경은
왕의 책도 아니고
양반의 책도 아니라
모든 사람의 책이다.”
성경은 신분을 부수는 책이었다.
양반도 죄인이고
상놈도 죄인이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같았다.

이 사상은
조선 사회에 조용히 폭탄을 던졌다.
장로교라는 방식
장로교회는
처음부터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목사 혼자 다스리는 교회가 아니었다.
장로들이 함께 결정했다.
회의를 했고,
투표를 했고,
토론을 했다.

이 구조는
조선 사람들에게 낯설었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윗사람 말만 듣는 세상이 아니라
같이 책임지는 구조”
교회는
작은 민주주의 연습장이 되었다.
교회 안에서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웠고,
듣는 법을 배웠다.
신분보다 신앙이 앞섰고,
출신보다 인격이 중요해졌다.

말씀 중심의 신앙
한국 장로교는
처음부터
“말씀 중심”이었다.
기도보다 성경이 먼저였다.
체험보다 교리가 먼저였다.
감정보다 기준이 먼저였다.

“오직 성경”

이 한 문장이
교회의 뿌리가 되었다.
그래서 장로교회는
찬송보다 설교가 길었고,
의식보다 가르침이 중요했다.
교회는
예배당이기 전에
학교였다.

교회는
기도하는 장소였지만
동시에
생각하는 장소가 되었다.
1907년
평양에서
대부흥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울며 회개했다.
그러나
그 울음은
개인만의 울음이 아니었다.
술 취한 나라,
폭력적인 사회,
거짓된 관계에 대한
집단적 통곡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 위에
조직이 세워졌다.
노회가 만들어지고,
장로가 세워지고,
신학교가 세워졌다.
교회는
느슨한 모임에서
공동체가 되었고,
공동체에서
제도가 되었다.
그 제도의 이름이
조선예수교장로회였다.

이 신앙은
이상한 신앙이었다.
왕에게 절하지 않으면서
폭력하지 않았고,
조상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으면서
부모를 버리지 않았다.
충성도 아니고
반역도 아닌
어딘가 낯선 태도.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지만
이 땅을 떠나지는 않는다.”

교회는
산속으로 숨지 않았고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학교를 세웠고,
여자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병든 자를 돌보았다.
교회는
천국을 말했지만
땅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제가
이 나라를 삼켰을 때,
교회는
다시 질문 앞에 선다.
“우리는
기도만 할 것인가,
아니면
기억할 것인가?”
그때
장로교회는
조용히
역사의 한 편에 서게 된다.
총을 들지 않았지만
이름을 지웠고,
군복을 입지 않았지만
신사에 절하지 않았다.
말씀으로 세워진 교회는
말씀 때문에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신앙은
이제
한 가정 안으로
들어온다.
말씀은
교회에만 머물지 않는다.
식탁으로 들어가고,
아이의 귀로 들어가며,
아버지의 침묵 속으로
스며든다.

이제
역사는
나라에서
집으로 옮겨온다.

#작가의 말
한국 장로교는
수입된 종교가 아니라
번역된 신앙이었습니다.
서양의 제도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조선 사람의 몸에
맞게 다시 입은 옷이었습니다.
그래서
권력 중심이 아니라
공동체 중심이 되었고,
명령이 아니라
합의로 움직였습니다.
교회는
신앙의 학교였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장소였으며,
질문하는 훈련장이었습니다.

의견을 묻고,
토론하고,
함께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정치 훈련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말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교회 안에서
처음 손을 들고
자기 생각을 말한 사람들이
밖에서도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항상 위의 말만 들어야 하는가?”
“왜 백성은
묻지 못하는가?”

이 구조는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양심의 토대가 됩니다.
기도하던 사람들이
침묵하지 않게 되는 순간,
그때부터
신앙은
역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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