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낡은 왕관 10

신사 앞에 서지 않는 사람들

by 강순흠


신사는
높은 곳에 있었다.
돌계단을 오르면
일본의 신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면
조선 사람은
‘순한 백성’이 되었다.
절을 하지 않으면
불순한 자가 되었다.

일제는
총보다 먼저
절을 요구했다.
“이것은 종교가 아니다.
국가의식이다.”
그 말은
편리한 거짓말이었다.
신에게 절하면서
어떻게
신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그 앞에서
갈라졌다.
“고개만 숙이면 된다.”
“마음으로만 안 믿으면 된다.”
“살아남아야 하지 않느냐.”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들은
신앙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웠기 때문이다.
절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자기 안의
어떤 선을
넘어버릴 것 같았다.

신사는
돌로 지은 건물이었지만,
그 앞에 서면
사람의 안쪽이 무너졌다.
학교에서도
절을 가르쳤다.
교실에서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게 했다.
“우리는
천황의 신민이다.”
아이들은
뜻도 모른 채
입을 열었고,
어른들은
입을 다물었다.

교회는
이제
기도의 장소가 아니라
선택의 장소가 되었다.
절할 것인가,
버틸 것인가.
어떤 목사는
끌려갔고,
어떤 장로는
교회를 닫았다.
예배당 문 위에는
‘폐쇄’라는 종이가 붙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집으로 갔다.
부엌에서
성경을 읽었고,
방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었다.
예배당이 없어도
예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다만
절하지 않았다.

이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저항의 다른 얼굴이었다.
총을 들지 않았고,
돌을 던지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자기 몸을
신사에 내주지 않았다.

어떤 이는
감옥에서 죽었고,
어떤 이는
고문으로 망가졌다.
사람들은
그들을
“고집 센 신자”라 불렀다.
그러나
그 고집은
믿음이 아니라
존엄이었다.
“우리는
황제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
이 말은
정치 구호가 아니었다.
정체성 선언이었다.

나라를 잃은 시대에
사람들이
붙잡을 수 있었던
유일한 나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나라,
그러나
빼앗을 수 없는 나라.
그 나라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신사 앞에서
돌처럼 섰다.

그리고
이 침묵은
나중에
큰 소리로
되돌아온다.
거리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
옥중에서
기도하던 사람들,
총칼 앞에서
이름을 부르던 사람들.
그 시작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
작은 선택이었다.

말씀은
이제
신사와 맞섰고,
교회는
국가와 마주 섰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한 교회의 역사로
흘러 들어간다.


#작가의 말
신사참배는
종교 문제가 아니라
존엄의 문제였습니다.
절을 하느냐 마느냐는
신학 논쟁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질문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살기 위해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선택을
우리는 쉽게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끝내 고개를 들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넘지 않기로 한
선 하나를
지켰을 뿐입니다.

이 글을 쓰며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절하고 있는가.
돈 앞인가,
권력 앞인가,
다수의 소리 앞인가.
신사는
사라졌지만,
절하라는 요구는
형태만 바꾸어
여전히 존재합니다.
신앙은
무릎의 각도가 아니라
삶의 방향입니다.
이 이야기는
과거의 순교담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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