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정권하의 박해
떠남을 택하다
예배당 문에는 붉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집회 금지.’
십자가는 내려졌고, 강단은 비어 있었다.
그 자리에 곡식 자루가 쌓였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그 앞을 지나갔다.
이계실 목사는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말없이, 움직이지도 않은 채.
“이제 예배는 집에서 하시오.”
인민위원회의 통보였다.
“기도는 마음속으로 하시오.
소리는 필요 없소.”
그날 이후 성도들은 밤에만 모였다.
불빛은 가렸고, 찬송은 속삭였다.
아이들은 입을 손으로 막고 노래를 배웠다.
그러나 밤도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종교는 인민을 마비시키는 아편이다.”
벽마다 붙은 구호였다.
누군가 그 문구를 읽고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가
그날 밤 끌려갔다.
“목사님, 엄집사가 잡혀갔습니다.”
“무슨 죄로?”
“예배를 드렸다고 잡아갔습니다.”
며칠 뒤 돌아온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몸은 있었으나 눈빛이 텅 비어 있었다.
손에는 피멍이 가시지 않았다.
“다시는… 모이지 마십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모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믿음은 중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새벽, 군화 소리가 마을을 흔들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목사 나오시오.”
이계실은 문을 열었다.
총구가 먼저 들어왔다.
“당에 협조하면 살 수 있소.”
“예배는 허락해 주겠소.
대신 설교는 바꿔야겠지.”
“무엇을 바꾸라는 말입니까?”
“하나님 말고… 인민을 말하시오.”
그 말은 조용했으나 분명했다.
믿음을 지우라는 뜻이었다.
그 말은 타협처럼 들렸지만, 실은 명령이었다.
이계실은 그날 밤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성경을 펼쳤으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그는 성도들을 떠올렸다.
이미 끌려간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남아 있는 연약한 이들.
“생각할 시간을 주겠소.”
“얼마나?”
“내일 밤까지.”
그날 저녁, 성도들이 몰래 모였다.
아이를 업은 여인, 손이 떨리는 노인,
얼굴이 새파란 청년들이 방 안에 가득 찼다.
“목사님,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살아야 합니다.”
이계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무엇으로 살 것입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말을 바꾸면, 예배는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한 노인이 울먹였다.
“그럼 우린 다 죽는 겁니까?”
이계실은 한참 침묵하다 말했다.
“아닙니다.”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방 안이 얼어붙었다.
“어디로요?”
“모르는 곳으로.”
“언제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말수가 줄었다.
짐을 싸는 대신, 버릴 것을 골랐다.
솥을 남기고 성경을 챙겼다.
사진을 두고 찬송가를 품었다.
아이들은 물었다.
“아버지, 왜 밤에만 다녀요?”
“빛이 너무 밝으면 길이 안 보여.”
어른들은 그 말을 삼켰다.
어느 집에서는 아이 울음이 멎지 않았다.
어머니는 입을 막고 울었다.
“이 길이 옳습니까?”
이계실은 고개를 숙였다.
“옳은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을 버리는 길보다는
낫다고 믿습니다.”
며칠 뒤, 또 한 사람이 끌려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밤, 이계실은 결심했다.
떠나지 않으면
믿음이 먼저 죽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성경을 덮고 말했다.
“이 땅에서는
더 이상 하나님을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땅으로
가야 합니다.”
성도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 않았다.
이미 울 만큼 울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그들은 기도했다.
“주여, 길을 보이소서.”
아직 배도 없었고
지도도 없었으며
목적지도 없었다.
그러나 떠나야 할 이유만은
분명했다.
믿음이 죄가 되는 땅에서는
더 이상 머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걸음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떠나고 있었다.
1950년 겨울, 바람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산길을 넘어 바다로 향했다.
울음소리는 삼켰고, 발자국은 눈에 묻혔다.
#작가의 말
이 장면은 탈출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단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싸우지 않았는가?”
“왜 남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들은
싸울 힘도, 법도, 언론도 없었다.
남는다는 것은
신앙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떠난다는 것은
살기 위한 선택이었고,
동시에 믿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들은 총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양심을 들었다.
이 결단은
영웅의 선택이 아니라
평범한 신자들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훗날 하나의 교단이 되고,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떠남은 패배가 아니라
자유를 향한 첫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