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 가져온 토지몰수
도적같이 해방이 찾아왔다.
덕천마을에서는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었다.
일본 순사가 사라졌을 뿐,
누가 권력을 잡을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어느 날 아침,
마을 입구에서 낯선 소리가 들렸다.
트럭이었다.
붉은 별이 그려진 군용 트럭 두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 뒤로
붉은 완장을 찬 조선 청년들이 줄지어 섰다.
그들 가운데 앞에 선 사람이
박철수였다.
어릴 때 소작농 아들이던 그가
이제 인민위원회 조직원이 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모여들었다.
면사무소 벽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박철수가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인민위원회의 결정이다.”
사람들의 숨이 멎었다.
“지주의 토지는 몰수한다.
그리고 농민들에게 무상 분배한다.”
순간 마을이 술렁거렸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의 시선이
언덕 위 큰 집으로 향했다.
최성도 장로의 집이었다.
그의 논은 마을에서 가장 넓었다.
사람들은 그 땅이
어떻게 그의 것이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일제 때였다.
일본 관리들과 가까웠던 그는
세금 못 낸 농민들의 땅을 사들였고
어떤 땅은 헐값에 넘어오기도 했다.
말하지 않았을 뿐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최성도 장로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이건 무슨 짓인가.”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박철수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어릴 때 굶주리던 자신에게
쌀 한 말을 내주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뒤에 서 있는 소련 군인이
그를 재촉했다.
박철수는 다시 종이를 들었다.
“지주의 토지는 인민의 것이다.”
최성도 장로의 얼굴이 굳었다.
“이런식으로 내 땅을 가져갈 수 없다. 이건 우리 땅이야.”
그 순간 군인 둘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가구가 마당으로 던져졌다.
곡식 자루가 찢어졌다.
노인들이 웅성거렸다.
김영복 집사가 사람들 틈에서
작게 말했다.
“이게… 해방인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언덕 아래 교회가 보였다.
십자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이계실 목사가
조용히 말했다.
“사람의 권력은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 말은 바람에 흩어졌다.
마을은 이미 둘로 갈라지고 있었다.
최성도 장로의 손자
최준호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까지 같은 교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오늘은 서로 다른 편에 서 있었다.
그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해방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 땅에서
더 큰일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작가의 말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남았나요.
역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선택 속에 숨어 있습니다.
역사는 종종
한 줄의 기록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그 한 줄의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과 눈물이 있습니다.
이후
그 선택이 어떤 길로 이어졌는지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